[백 스테이지] 박영철 LG아트센터 무대기술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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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연출가와 관객이 무조건 큰 소리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소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전자음향을 사용하더라도 마이크와 스피커를 쓰지 않은 것처럼 착각이 들 만큼 '자연스러운 소리' 를 들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

박영철(44.사진)LG아트센터 무대기술팀장은 20년 넘게 공연장 음향 분야에서 일해온 베테랑이다. 그는 무대 음향에서 장내 방송.시그널 등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한 PA(public address)보다 음향의 보정을 위한 SR(sound reinforcement)가 중시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무대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가능하면 그대로 다수의 관객에게 들려주는 게 목표다.

최근엔 잔향 조절을 비롯해 음질의 변형, 가상의 느낌을 가미한 음향가공에 이르기까지 음향 엔지니어링의 폭이 넓어졌다.

박팀장이 '음향' 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 시절. 전자공학과에 다니면서 음악 동아리에서 '오디오 전문가' 로 활동했다.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이곳 저곳 위문공연을 다닐 때 마이크.스피커.앰프 운반 및 수리를 도맡아 했다. 모두 청계천에서 부속을 사다가 직접 조립한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오디오 생산업체에서 일하다가 1980년 세종문화회관 음향실 근무를 시작으로 공연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83년 워커힐 호텔로 자리를 옮기면서 버라이어티쇼의 화려한 음향 연출도 해보았고 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 입사, 뮤지컬 '캐츠' '레미제라블' '겨울나그네' 의 제작에 참여했다.

LG아트센터에는 공연장 설계 당시 음향자문으로 참가했다가 개관 후 한 식구가 됐다. 그가 국내 최고의 무대로 꼽는 공연장도 물론 LG아트센터다. 오랜 스태프 경험을 공연장 설계에 반영할 수 있었기에 더욱 뿌듯하다.

문예진흥원과 창원.전주.대전.성남 등 지방 공연장의 건립.개보수 자문을 맡기도 한 그는 "공연장 음향은 설계단계부터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방 문예회관은 건축 예산에 컨설팅 비용을 반영하기 힘들어 문제가 많다" 고 지적했다.

박팀장은 오는 12월 초 개막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을 위해 지난달 뉴욕 머제스틱 극장 공연을 관람했다. " '오페라의 유령' 은 떠들썩한 분위기의 록뮤지컬이 아니라 클래식한 분위기인 만큼 마이크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할 계획입니다. "

요즘 그는 전체적인 안전관리와 음향.조명.무대 등에 대한 인력배분 등 총괄적인 업무를 맡고 있고 직접 음향 콘솔을 조정하지는 않는다. 후배들이 직접 경험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이 오르기 전 세팅 과정에서는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공연 중에는 주로 객석 뒷자리나 무대 양옆의 갤러리에서 진행상황을 살핀다. 무대 뒤는 어둡기 때문에 클래식 이외의 장르에선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동선에 발광 다이어드(LED)나 야광 테이프로 표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자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스태프는 자신의 존재가 철저히 무대 뒤에 가려져야 해요. 연출가의 허황된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준비기간이 끝나고 막이 오르는 순간 느끼는 희열과 감동은 남다르지요. "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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