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네' 이후 긴장의 북한·중국 국경… 현지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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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도 그렇게 한국에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길수 가족은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죠. "

장길수(17)군 가족이 서울에 도착한 지난달 30일 오후 10시쯤 지린(吉林)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옌지(延吉)시.

옌지교회 부근 한 식당에서 만난 탈북자 김철(38.가명)씨는 "아내(34).아들(8).딸(6)과 함께 지난 5월 고향인 함북 무산을 떠났다" 며 "북에 두고온 어머니(63)와 동생 가족 3명이 오는 대로 한국으로 가고 싶다" 고 말하면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지 탈북자 지원단체의 A씨는 "이곳의 탈북자들은 한국 TV뉴스를 위성방송으로 동시에 불 수 있어 길수가족의 서울도착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별로, 혹은 가족단위로 서울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중국정부가 7월부터 대대적인 탈북자 단속에 나서자 이들은 불안감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 B씨는 3일 "중국 공안당국이 이 지역 교회나 한국인 거주지에 대한 집중적인 내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면서 "이런 조치는 길수군 가족의 서울행에 따라 예상되는 가족동반 탈북자의 급증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최근 동북 3성지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해온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선교.대북지원단체 관계자 4백명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에 대한 감시활동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들어 탈북자 신고에 2천위안(32만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등 적극적인 탈북자 색출 및 북한 송환에 나서고 있다고 B씨는 전했다.

이같은 중국정부의 강경방침은 3일 오전 9시에 벌어진 탈북자 죄수 정광호(21)씨에 대한 공개 총살집행에서도 감지됐다.

기자가 직접 목격한 사형집행은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시 교외에서 벌어졌다.

함북지역 출신으로 알려진 정씨는 1999년 탈북한 뒤 허룽(和龍)현 등지에서 세차례에 걸쳐 살인강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아왔다.

중국측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2년여 넘게 재판을 벌여오다 이날 전격적으로 선고공판을 연 뒤 형을 집행한 것. 공개재판 상황은 이날 옌볜 라디오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현지 소식통은 "외국인 죄수를 공개처형한 것은 탈북자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는 한편 중국내 탈북자에게도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북한도 최근 함북 회령시에 1천5백명 수용규모의 탈북자 교화시설을 새로 짓고,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총괄하던 탈북자 단속업무를 국경경비사령부에 주로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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