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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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구(走狗)는 사냥개의 다른 이름이다. 앞잡이를 주구라고도 한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사냥감을 향해 냅다 질주하는 개가 사냥개다.

사냥개의 역사는 원시 수렵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의 뛰어난 달리기 실력과 천부적 후각능력을 알아차린 인간은 개를 길들여 수렵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천년께 사냥 광경을 그린 이집트 고분벽화에는 사냥꾼과 함께 달리는 개가 묘사돼 있다.

사냥개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냄새로 사냥감을 추적해 주인에게 알려주는 개가 '포인팅 도그' , 즉 지시견(指示犬)이다. 사냥감을 찾아내면 그 자리에 멈춰서 한쪽 발을 들어올리거나 그 자리에 착 엎드리는 방법으로 위치를 알려준다. 포인터종과 세터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리트리버' 로 불리는 회수견(回收犬)도 있다.

사냥꾼이 총을 쏨과 동시에 사냥감이 떨어진 장소로 쏜살같이 달려가 먹이를 물어오는 역할을 한다. 래브라도종 리트리버가 가장 유명하다. 셋째가 조류를 사냥할 때 새를 찾아내 날아오르게 하는 '플러싱 도그' , 즉 수출견(狩出犬)이다. 스패니얼 계통의 사냥개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밖에 사냥감을 쫓아가 넘어뜨리거나 물어뜯는 격투견(激鬪犬)도 있다. 어떤 종류의 사냥개든 주인의 지시에 따라 사냥감을 잡는 걸 도와주기는 매한가지다.

KBS 노조가 발행하는 'KBS노보' 에 공영방송을 '주구언론' 으로 지칭한 글이 실려 화제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발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신문과 방송, 신문과 신문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이 글은 '수구언론 대(對) 주구 및 들러리언론의 추악한 대리전' 으로 표현하고 있다.

'빅3' 로 통칭되는 수구언론이 물고 늘어지던 김대중(金大中)정권의 악재들이 '이 가뭄에…' 를 계기로 약효가 떨어진 틈을 타 정부가 언론사 탈세 발표로 싸움판을 역전시키자 눈치보기로 주춤하던 친여(親與)언론이 적극 가담함으로써 싸움판이 바짝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대로 하자면 최근의 탈세 언론사 고발은 김대중 정권이란 사냥꾼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라는 총을 들고, 공영방송과 군소신문을 각각 앞잡이와 바람잡이로 내세워 '빅3' 라는 사냥감을 상대로 벌이는 한판 사냥대회로 감상할 수 있겠다.

"국민들은 이제 지치고 피곤하다. '언론탄압' 이건 '언론개혁' 이건 이런 진흙탕 싸움판에서 선량한 국민의 '알 권리' 는 염두에도 없는 듯하다" 고 이 글은 통탄하고 있다. 정말 해괴한 사냥대회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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