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삼성전자 작년 4분기 이익 2600억이 사라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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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조7000억원에서 3조4400억원으로.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연결 영업이익이 조금 바뀌었다. 전자는 올 초 발표치, 후자는 6일 1분기 실적 잠정치를 공시하면서 밝힌 수치다.

계산을 잘못해 바로잡은 게 아니다. 연결 영업이익이란 회계감사 기준에 따라 자회사의 이익을 포함해 계산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1분기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하면서 삼성카드·삼성LED 등이 연결 대상에서 빠졌고, 영업외 비용이었던 것이 영업 관련 비용으로 회계항목이 바뀌어 이익이 줄었다”고 밝혔다. IFRS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영업이익에서 2600억원이 ‘증발’한 것이다.

내년부터 모든 상장사가 채택해야 하는 IFRS, 이렇게 기업의 실적 수치를 바꿔놓는다. 또 자본이나 부채 규모도 확 바뀔 수 있다.

◆자회사, 어디까지 넣나=IFRS는 연결재무제표에 넣는 자회사 기준이 다르다. 지금은 ‘지분 50% 초과는 무조건, 30% 초과~50% 이하는 최대주주인 경우’다. 그러나 IFRS는 ‘50% 초과’만 대상이다. ‘50% 이하’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증명하면 연결재무제표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지분 30% 초과~50% 이하’의 자회사를 포함할지 여부는 각 기업이 알아서 정한다.

삼성전자는 지분 35.3%를 가진 삼성카드를 뺐다. ‘확실한 지배’가 아닌 경우는 제외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삼성전기와 지분 50%씩을 나눠가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포함했다. ‘과반수’는 아니지만 삼성전자가 이사 지명권을 가져 사실상 지배한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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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지주회사인 ㈜LG도 ‘50% 초과’가 아니면 연결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이에 따라 ㈜LG 지분율이 30%대인 LG전자·LG화학 등 주력사들이 모두 빠진다. ㈜LG는 “지분 30%대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게 대단히 복잡해 일괄적으로 ‘50% 초과’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 1분기부터 IFRS를 앞당겨 채택한 삼성·LG 이외엔 대부분의 기업들이 아직 연결재무제표에 어디까지를 포함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다. 기아자동차 주식 35.02%를 가진 현대자동차는 “회계법인과 각종 손익을 따져가며 논의 중”이라고 했다.

◆개별재무제표엔 주의=그간 기업의 실적을 파악하는 주 자료는 연결재무제표가 아니라 개별재무제표였다. 여기엔 자회사를 전부 뺀 실적이 담겨 있다. 하지만 IFRS 도입 첫해에 개별재무제표만 봤다간 혼동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당기순이익이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2009년 개별 당기순이익은 9조6495억원이었으나, IFRS 기준으로 바꾸면 6조2081억원이 된다. LG전자는 2조528억원에서 1조1468억원으로 거의 반 토막 난다.

‘지분법 이익’이란 것이 빠지기 때문이다. 지분법 이익이란 자회사들의 순익에 지분율을 곱해 더한 수치다. 신한금융투자 김동준 투자분석부장은 “이런 변화를 모르는 투자자들은 크게 줄어든 당기순익만으로 실적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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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는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삼아 여기에는 지분법 이익을 반영하도록 했다. IFRS에서 개별재무제표는 그저 ‘참고자료’ 정도란 의미다.

◆자산 늘고 부채 감소=현재 회계 기준은 유형자산의 경우 구입 원가로 계산하도록 한다. 20년 전에 산 땅의 가치도 당시 가격으로 계산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IFRS는 기업이 원하면 매년 자산가격을 평가해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토지가 많은 기업이 유리하다. 오른 땅값을 반영하면 자산 규모가 늘고, 부채비율은 확 낮아진다. 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싼 주식인 것처럼 비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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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자산 재평가를 한 한국전력이 그런 예다. 재평가 결과 한전은 평가 차익 11조3000억원이 생겼다. 대우증권 신민석 연구원은 “재평가 결과를 반영하면 한전의 PBR은 0.7에서 0.5로 30% 정도 낮아진다”고 말했다.

권혁주·이종찬 기자

◆국제회계기준(IFRS)=정확히 말해 유럽회계기준이다. 종전에 한국은 미국식 기준을 썼다. 그러나 미국에서 엔론 등 대규모 분식 사태가 벌어지자 IFRS를 택하는 나라가 늘었다. 미국도 2014년 IFRS를 도입한다. 초기엔 기업도 투자자도 혼란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를 도입하는 것은 외국과 같은 잣대로 잰 한국 기업의 모습을 국제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은 매년 자산 재평가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오른 땅값을 기업 가치에 반영하지 못했던 ‘회계 디스카운트’가 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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