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저자 김대호(42)씨는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로 있던 탈북자다. 1994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경유해 한국에 왔다. 정확한 귀순 날짜는 그해 4월 27일이었는데, 한국 당국은 5월 7일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

여만철씨 가족과 동행했으나 정작 귀순 기자회견에서 그는 빠졌다. 그는 '익명상태' 의 귀순자인 셈이다.

책은 그런 김씨가 말하는 귀순담(상권)과 서울살이 고생담(하권)이다. 작가 지망생인 그의 세번째 책이다. 이미 북한실정을 소재로 한 자전소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과 시집 『행복』을 출간했으나 대중적인 인지도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작가 김대호' 를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고, 그 결과가 이번 책이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됐다 해도 '탈북기' 는 여전히 흥미있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저자의 북한내 신분(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우라늄 폐수처리 직장 부직장장.남포지구 수산 외화벌이 상무 등)은 저자가 쥐고 있을 비밀을 증폭시킨다.

저자는 이게 당시 남북관계의 예민함 때문에 익명상태의 탈북자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말을 했는데, 독자의 기대감에 충분한 만족을 줄지는 책으로 보아 다소 의문이다.

상권은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한다. 귀순 동기가 된 인민무력부와 당 조직간의 세력다툼에다 아내와의 로맨스, 두 딸에 대한 사랑 등은 북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핵개발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를 외화벌이로 자체해결하라는 당국의 지시로 남포지구 수산 외화벌이 상무로 근무했다는 이력을 밝히는 대목이 그렇다.

그는 결국 외화벌이 중 음모에 말려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광산촌에 유배됐다는 소식을 듣고 저자가 갖는 죄책감, 그로 인한 현실 부적응, 칩거와 탈선, 사기 당한 일 등을 엮은 하권의 서울살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재왈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