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현상수배 20여곳 성업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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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갑부로 행세하며 주식투자를 미끼로 거액을 가로채고 마음에 드는 여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건드린 파렴치한' .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A씨(32)에 대한 현상수배 문구다.

'사기꾼 ○○○을 찾습니다' 란 제목 아래 그의 상반신 사진과 함께 주소.주민등록번호.키.전 직장까지 공개돼 있다.

관련자들이 최고 수천만원까지 현상금을 내건 '현상수배(Wanted)' 사이트들이 성행 중이다.

현재 인터넷상에 운영되는 현상 수배 사이트는 20여개. 사이트마다 1백~2백명이 올라 있다.

당사자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확인 안된 혐의들이 함부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수사당국은 "명백한 명예훼손" 이라면서도 단속 대신 오히려 이들 사이트에 공개수배자를 띄우는 등 이용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 아버지도 고발=B씨(29)는 간통한 여자와 도주했다는 이유로 한 사이트에 수배돼 있다. 현상금은 3백만원. 연락받을 전화는 휴대폰이다.

1999년 10월 개설된 R사이트에서 현상수배된 사람은 2백56명.

사이트 운영자는 "지금까지 사이트에 등록된 수배자를 붙잡아 현상금을 탄 경우도 10여건"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운영된 W사이트 현상수배 코너에도 1천5백여만원을 빌려 쓴 뒤 도망쳤다는 C씨(47) 등 20여명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차량번호 등이 공개돼 있다.

B사이트 '긴급 수배' 게시판에는 지난달 24일 '가정불화를 일으키며 폭력을 일삼았다' 며 아버지의 실명과 직장.휴대폰 번호를 공개한 아들의 고발장도 있다.

함부로 실리는 신원정보 때문에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직장에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A씨의 옛 직장측은 "회사 이름이 게재돼 막대한 신용상 피해를 볼 수 있어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고 밝혔다.

◇ 단속은 안해=경찰청 홈페이지의 공개수배란과 공식수배 전단 외에 개인적인 현상수배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5일 "경찰청의 인터넷 수배 내용을 무단 링크하거나 복제해 게시하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며 "수배 사이트들이 최근 급속히 생겨나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실태를 파악 중" 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김일수(金日秀.법학과)교수도 "사적 이해관계 때문에 신원을 마구 공개하는 것은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일" 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관련 사이트 대표 한모(50)씨는 "우리 회사와 관계없이 회원들끼리 정보를 올리고 사례금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 불법인 줄은 몰랐다" 며 "불법으로 판명되면 사이트를 폐쇄하겠다" 고 말했다.

정효식.김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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