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임금동결'과 '7년 일자리' 빅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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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 노조가 임금 대신 일자리를 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의 폴크스바겐 노사가 2011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28개월간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고 4일 보도했다. 폴크스바겐은 이날 25시간 넘게 계속된 마라톤 협상에서 2007년까지 임금을 동결하고, 2011년까지 6개 공장 10만3000명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이번 합의로 연간 고용비용의 30%인 20억유로(약 2조8000억원)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이날 노사협상 타결로 총파업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다.

◆ 노조 왜 물러섰나=독일은 카를 마르크스를 배출한 나라답게 노동자의 힘이 매우 센 나라다. 노조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폴크스바겐은 과거에도 노사관계가 원만했다. 1990년대 불황 때도 주4일제 근무를 도입해 대량해고를 피해갔다. 이 과정에서 폴크스바겐의 지분 20%를 갖고 있는 독일 내무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고용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정부는 이번 노사 합의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슈뢰더 정부가 독일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추진 중인 ▶사회보장 혜택 축소▶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정책이 적용된 것이다.

그런데도 노사 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생산성 하락과 실업률 상승이라는 독일 경제의 문제점 때문이다. 독일 근로자의 임금은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보다 6배 이상 많고, 실업률은 5년 새 최고치인 10.7%에 달한다. 독일 최대 산별 노조인 금속노조 (IG메탈)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노동자는 월 평균 2600유로(약 37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휴일수당(1120유로.160만원)과 휴가 보너스(816유로.120만원)를 합치면 한 달에 4536유로(650만원)를 받는 셈이다.

노조는 이러한 고임금 체제 속에서는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업 해외 이전이 조합원의 대량 실직사태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금동결, 고용보장'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임금 보전 없는 노동시간 연장만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해외로 사업장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폴크스바겐의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5% 감소한 7600만유로에 불과했다.

◆ 임금동결, 근로시간 연장 잇따라=서유럽 국가에서는 임금 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벤츠자동차 생산 회사인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독일 남부에 있는 생산공장 한 곳의 노동자 6000명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추가 수당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했다. 지멘스도 임금이 낮은 헝가리로 돌리지 않는 대신 2000여명의 근로자에 대해 추가 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독일 최대 여행사인 토마스쿡은 최근 주당 38.5시간이던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늘렸으며 프랑스 보슈의 한 공장 노조도 주당 노동시간 1시간 연장, 3년간 임금동결 같은 회사 측 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폴크스바겐의 사측 협상대표인 요제프-피델리스 젠은 "기업이 고용보장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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