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정동길 캐나다 대사관 건축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서울 중구 정동길 옆에 신축할 예정인 캐나다 대사관에 대한 규제완화 논란(본지 5월 25일자 29면)이 거세지고 있다.

덕수궁 등 사적지와 문화재가 많은 정동 일대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재 주변에 대한 건축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캐나다의 한국대사관 신축 때 각종 혜택을 받았으므로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며 외교적 신뢰관계가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캐나다 대사관 예정터의 용적률을 높이는 안건을 표결 처리할 예정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이 주목된다.

캐나다 대사관측이 지하 2층.지상 9층 규모로 공관을 지으려는 곳은 사적 124호 덕수궁으로부터 2백m, 사적 256호 정동교회에서 1백60m, 사적 253호 옛 러시아공사관에서 92m 거리에 있다. 정동극장.덕수궁 돌담길 등과 연결되면서 이 일대는 최근 역사.문화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6일 이 곳을 찾은 이경진(31.서울 마포구 도화동)씨는 "고층 대사관을 하필이면 국가 문화재 주변에 지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문화재 주변 건축물에 대해 규제를 강화한 관련 법률의 취지를 지자체가 살리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도록 한 건축규제 범위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부터 5백m 이내로 지정했다. 종전 건축법에서 규정한 1백m에 비해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서울시는 아직 관련 조례를 확정하지 못한 채 1백m 수준의 지침만을 마련, 운영 중이다. 이에 따라 캐나다 대사관의 경우 현행법상 덕수궁과의 연관성을 무시해도 되는 등 5대궁(宮) 주변조차 고층 건물이 난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서울시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정한다. 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관련 법에 지역별 특성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무리지만 5대궁 주변은 특별구역으로 정해 광범위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캐나다 대사관의 고층 신축을 허용하면 비슷한 요구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한 위원은 "덕수궁 뒤편에 있는 미 부대사관저 등 사적지 주변 대사관들이 신.증축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안다" 며 "캐나다 대사관의 용도변경을 허용하면 선례를 남기게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캐나다 대사관측은 서울시의 규정에 맞춰 건물 높이를 30m로 낮추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 밝혔다.

김성탁.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