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서 사서 어깨서 파는 게 왜 그리 힘든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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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26면

물건값이란 게 그렇다. 비싸지면 사려는 사람은 줄어든다. ‘한번 사볼까’ 했다가도 ‘다음에 사지 뭐’ 하고 지갑을 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 가격에 적응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당장은 ‘가격 인상 쇼크’에 수요가 준다. 식품업체들이 물건값을 올릴 때 판매 가격이 아니라 판매 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충격이 덜한,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린다.

고란과 도란도란

그런데 이런 이치에서 예외인 시장이 있다. 주식시장이다. 증시에서는 값이 올라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주가가 1000원일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5000원, 1만원이 넘어가야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주가가 바닥일 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주가가 슬금슬금 오르면 의심한다. 그래도 계속 오르면 그제야 장밋빛 전망에 취해 주식을 산다. 그런데 이때가 꼭 고점이기 쉽다. 주가는 이후 내리막길로 향하고 고점에 들어간 투자자들은 ‘물리게’ 된다. 원금 회복 때까지만 기다리자며 비자발적 장기 투자의 길에 들어선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파는 게 아니라, 어깨에 샀다가 바닥에서 물린 후 무릎쯤 왔을 때 팔아버린다. 개인들 대부분이 주식 해서 돈 잃는 이유다.

펀드도 마찬가지다. 바닥에서는 돈이 안 들어온다. 적립식 펀드 투자자들도 바닥에서는 돈 넣는 것을 중단한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야 다시 돈을 넣기 시작한다. 2007년 증시가 활황일 때도 그랬다. 코스피지수가 1700을 넘어 2000선까지 뚫고 올라가자 펀드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한 그해 10월 한 달 동안에만 5조원 가까운 돈이 국내 주식형 펀드에 몰렸다.

그러다 시장이 고꾸라지면서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손실을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은 시장이 조금만 오르면 재빨리 펀드를 환매했다. 2009년 시장이 50% 가까이 오르는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0조원 가까이 줄었다. 증시 상승의 열매를 개인들은 맛보지 못한 셈이다.

코스피지수가 지지부진하다. 올 들어 1%도 못 올랐다. 외국인이 5조원 가까이 주식을 사들이는데도 그렇다. 펀드 환매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러다 지수가 1700을 넘어 2000까지 올라가면 앞뒤 안 재고 투자에 나섰던 2007년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어깨에서 산 뒤 기다리다 지쳐 무릎에 파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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