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너무 약한 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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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10면

박사는 수를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수, 소수를 가장 사랑했다. 오가와 요코가 쓴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나오는 박사의 말이다.
나는 수를 싫어한다. 소수든 자연수든 우애수(友愛數·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다른 수가 되는 수)든 실수든. 내가 박사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수에 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구구단을 힘들어했고 2차 방정식을 풀지 못했고 인수분해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수학의 정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삼수를 할 때까지 다 풀지 못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이것도 그 ‘기대부응본능’ 때문인지 모른다. 언젠가 적성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내 단순계산능력이 6점이었다. 복잡한 계산능력이 아니라 단순계산능력이. 그것은 일종의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왜냐하면 100점 만점이었으니까. 자신의 열등한 단순계산능력을 알고 나자 더욱 수학에 자신감을 잃었고 못했고 싫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문과를 지망한 것은 단지 한 가지, 수학이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오직 수를 피해서 도망 다니며 산 인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서 곳곳에 매복해 있는 수와 마주쳤고 번번이 수 때문에 나는 낭패를 당했다. 그 박사가 사랑한 수 때문에.

회사에 들어올 때도 그랬다. 광고 업무는 숫자와 상관없을 줄 알았다. 기획을 하고 카피를 쓰고 디자인을 하는 업무일 테니 가장 숫자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라고 짐작했다. 그것이 순전히 “그건 니 생각이고!”란 걸 깨닫기까지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광고 업무 담당자로서 가장 먼저 인계받은 것이 각종 매체의 광고단가표였으니까.

싫어하는 것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숫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내 주민등록번호도 겨우 기억한다. 누가 내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볼 때면 차라리 명함을 건넨다. 그런 내 머리에 그 복잡한 단가표가 제대로 입력되고 출력될 리 만무하다.

경영자는 광고에 관심이 많다. 광고에 대해서라면 내용만큼이나 비용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그러니 수시로 광고 담당자를 불러 자신의 관심사를 확인한다.
“김 팀장, 요즘 신문 광고비로 한 달에 얼마나 써요?”
당연하지만 나는 쩔쩔맨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그냥 러프하게 말해 봐요.”
“제가 확인해서….”

“그럼 전체 광고비 중 신문 광고비가 몇 퍼센트쯤 돼요?”
경영자의 얼굴에 짜증이 올라온다. 내 등줄기로 땀이 한 방울 또로록 흘러내린다.
“중앙일보 광고 단가는?”

모든 경영자는 직원에게 질문할 권리가 있다. 그래도 매번 직원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 하는 건, 글쎄 좀 곤란하다. 나는 청문회에 나온 사람처럼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숫자라고는 오직 경이적인 내 단순계산능력 점수인 6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확한 수치를 확인해서….”
나는 수가 싫다. 수를 사랑한 박사도 싫고 광고단가도 싫다. 나는 경이적인 내 단순계산능력이 원망스럽다. 내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다. 이제 경영자의 얼굴에는 짜증이 사라진다. 대신 싫증이 그의 얼굴을 뒤덮는다.
“김 팀장, 우리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죄송합니다. 제가 정확한 수치를 확인해서….”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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