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교육감 선거 정치중립 지켜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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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나라는 미국·독일 등 자유주의적 선거를 지향하는 나라와 달리 프랑스·일본 등과 같이 선거 규제가 엄격한 나라 중 하나다. 지금처럼 교육감 선거가 보수·진보 간 또는 각 정당 간 이념대결 구도로 확대돼 과열·혼탁해진다면 지금보다 더 엄격한 선거규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행 지방교육 자치에 관한 법률은 그 목적을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지방교육의 특수성에 두고 있다. 이는 헌법 제3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이를 위해 지방교육 자치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교육감은 주민직선제로 선출한다. 특히 정당 관여나 정당 추천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공연히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정치노선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런 정치적 이해관계가 지방교육 정책에 반영될 소지도 충분하다.

이렇다 보니 정치적 이해관계가 교육정책 내용과 노선을 넘어 개인적 이해관계와 얽히고, 매관매직하는 부패로 연결되기도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어떤 정치적 노선이나 권력에도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교육 내용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포함된다. 교육행정에는 정치적 사안들이 이미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사안들을 결정할 때도 정치적 편견이나 이념적 성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불편부당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교육 수요와 의사를 반영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해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자율성과 분권성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보장돼야 한다. 또 일선 학교교육이 중앙정치의 정파적 영향을 받지 않고 민주교육의 기본 모습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방교육의 수장인 교육감마저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특정 정치세력의 정파적 이해관계와 연계돼 그들의 배경을 업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해 한다면 지방교육 자치는 지역주민이 소망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결국 몇몇 관련자만의 실패한 교육자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영국·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주정부가 모든 주 내 공립학교의 교육에 법적 책임을 지고 있다. 교육감은 주민 직선보다 주 교육위원회에서 선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교육감이 지방교육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근간이 되고, 민주주의 훈련의 공동체 학습과정의 구심체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정파적 색채가 지나치게 반영돼 교육 내용이 왜곡돼서는 안 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지방교육 자치의 선행 기본조건인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