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 사법연수원, 중매도 성적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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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과거에는 사법시험 합격을 '행복의 시작' 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경쟁의 터널' 에 들어서는 것일 뿐입니다. "

연간 변호사 1천명 배출 시대를 앞두고 사법시험 합격생들이 2년 동안 실무를 배우는 사법연수원 생활도 무한경쟁의 풍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이끄는 것은 변호사가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 섣불리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는 일반 직장인보다도 수입이 적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따라서 연수원생들은 성적 상위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판.검사 임관에 매달린다. 그러나 판.검사 임관 숫자는 지난해와 올해 2백여명에 머물러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게다가 올해는 연수원생이 8백명으로 늘어 사태는 심각하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연수원에 등장한 쪽지시험 하나에도 원생들은 '목을 매는' 형국이다.

한 연수원생은 "쪽지시험 하나라도 잘못 보면 기분이 찜찜한 게 마치 고등학생이 된 기분" 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모두가 1등 신랑감으로 평가하던 연수원생을 바라보는 '마담뚜' 들의 시각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결혼 중매업자 A씨는 "요즘엔 연수원 성적이 좋아 판사 임관 안정권에 든 연수생이 가장 인기가 좋고 검사나 변호사가 될 연수원생은 인기가 떨어지는 편"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예전의 끈끈하던 연수원 동기 개념도 희박해지는 듯하다. 연수원생들은 기수 모임보다는 같은 반.조끼리 또는 동문회나 소모임으로 모이는 추세다. 이같은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초기부터 로펌 취업이나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 지난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吳모(34)씨도 최근 동료 몇명과 함께 이 모임을 만들었다. 대기업 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는 吳씨는 "모두 판.검사로 임관될 수 없는 현실에서 아예 변호사 개업 준비를 확실히 해두는 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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