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게임패 직전 구원투수로 등판 … 구조조정 대신 신규 투자로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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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말 주자 만루, 콜드게임으로 패하기 직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셈이오.”

일진디스플레이의 심임수(56·사진) 사장, 지난해 3월 선임되자마자 이런 말을 들었다. 그것도 오너인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에게.

일진디스플레이는 일진다이아몬드에서 분할된 이후 2008년까지 내리 4년간 적자행진을 했다. 다시 실점하면 ‘게임 끝’이었다. 바로 이때 역전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허 회장은 베테랑을 등판시켰다. 삼성SDI에서 30년간 디스플레이 분야를 맡았던 심 사장이 그였다.

그는 미처 몸을 풀 사이도 없이 현장 파악에 나섰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대개 그렇듯, 사기는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이 회사는 유기발광다이오드(LED)의 기초소재인 사파이어 기판(웨이퍼) 제조기술을 가진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적자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다양한 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투자를 지속하면서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 배를 곯으면서도 농사지을 ‘종자’만은 지키고 있었던 셈이다. 때마침 봄바람이 불면서 그 종자가 싹을 틔울 여건도 서서히 익고 있었다. 이때 그가 택한 건 구조조정이 아닌 신규 투자였다. 사파이어 기판 증산과 터치패널 신제품 생산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감행했다. 사장 취임 한 달 만이었다.

“아무리 전망이 밝다고 해도 내리 적자를 낸 회사에 새로 돈을 넣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수종 사업’에 대한 회장의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지요.”

전문경영인의 빠른 판단과 오너의 ‘뚝심’이 만나 결국 열매를 맺었다. 적기투자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일진디스플레이는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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