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소리의 황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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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음악을 듣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황홀감을 맛본 적이 있으신지.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황홀경에 도취하는 '호사' 는 자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아니다.

음악심리학자들이 '황홀경 감상' 이라고 정의하는 이 순간은 한번에 4~5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허리에서 시작해 등과 어깨를 지나 양볼과 두피를 자극하는 전율감 말이다. 감상자가 특히 좋아하는 음악일수록 전율감을 느낄 확률은 더 높아지는 법이다.

김갑수 시인은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며 그 제목을 단 단행본(웅진출판)까지 냈지만, 그의 친구인 사진작가 윤광준은 "차별된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음악에 푹 빠져 지낸다" 고 고백한다.

음악회 현장에서 듣는 것만큼 양질의 감상 방법은 없지만, 많은 청중을 한 데 모아야 하는 콘서트의 특성상 레퍼토리의 다양성은 오디오를 통한 감상에 필적할 수 없다.

좋은 음악(소프트웨어) 못지 않게 오디오(하드웨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에도 짜릿한 전율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소리의 황홀』은 LP가 음반 시장을 지배하던 대학 1학년때 오디오에 입문해 A/V시대를 거쳐 오디오 칼럼니스트로 변신하는 저자의 편력 이면에 담긴 진솔한 삶의 고백록이다.

돌이킬 수 없이 '오디오파일(애호가)' 의 길로 들어섰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강요하는 거만한 몸짓을 보이지는 않는다. 내로라 하는 오디오 매니어지만 한 번 산 오디오는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무딘 감각의 소유자이거나 진정한 음악 애호가일 확률이 높다고 진단하는 '너그러움' 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고 오디오(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해가는 사람이나 같은 작품의 음반을 연주자별로 컬렉션하는 음반 컬렉터보다 경계해야 할 유형은 장식용으로 오디오를 구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오디오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브랜드별 특성과 역사를 정리해 놓은 부분은 오디오 입문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다. 책의 만듦새도 훌륭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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