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성냥공장 소녀 · 레닌그라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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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8일 시네큐브 광화문에서 개봉하는 '성냥공장 소녀' 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영화다.

11년 전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베니스 영화제가 회고전을 마련했을 정도로 명장 소리를 듣는 핀란드 출신의 아키 카우리스메키 감독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고루 비판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영상.음악.대사처리 등 영화적 요소에선 크게 차이가 난다.

흥미로운 점은 두 편 모두 1989년에 만들어졌으나 감독은 '성냥…' 을 자신이 만든 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레닌그라드…' 를 최악의 졸작으로 꼽았다는 것. 물론 최종 판단은 관객 개개인의 몫이다.

'성냥…' 은 대사를 극도로 제한하며 자본주의의 뒤안을 음산하게 다룬 작품. 각양각색의 성냥을 토해내는 기계음과 컨베이어 벨트를 클로즈업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거대한 산업문명에 매몰된 현대인의 소외를 들추어낸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집과 공장을 쳇바퀴처럼 도는 소녀, 그 소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 그리고 잇따른 실연 및 세상에 대한 복수가 그려진다.

핏기를 찾을 수 없고, 표정 또한 거의 없는 소녀의 얼굴이 때론 공포 분위기마저 풍긴다.

소녀의 가족들이 하는 일이란 TV시청 정도. 감독은 그 TV뉴스에 천안문 사태 당시 진압군의 탱크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청년을 삽입시켜 사회주의에 대한 절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96년에 이어 이번에 재개봉되는 '레닌그라드…' 는 시종일관 음악이 흐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다. 핀란드 촌구석의 밴드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미국 전역을 방황하다가 결국 멕시코에서 성공한다는 동화 같은 얘기다.

미국인의 구미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로큰롤.컨트리.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가는 시골 밴드의 좌충우돌이 재미있다. 기회와 풍요의 땅으로 여겼던 미국이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딱따구리 부리 모양의 머리칼에 뾰족 구두를 신은 주인공들의 모습도 익살스럽다.

세상을 비아냥대는 듯한 두 편 모두 편하게 감상하긴 어렵지만 시간을 투자한 만큼 뭔가를 건질 수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관람료는 '성냥…' 7천원, '레닌그라드…' 5천원, 두 편 동시 1만원. 02-2002-7770.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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