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76세에 등단한 경영인 출신 프랑스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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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의 나이에 처음 소설을 출간한 늦깎이 작가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의 권위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프랑스 문단에 새 이정표를 세운 주인공은 항공.통신.에너지.수송 등의 업체에서 근무하다 1994년 은퇴한 베르나르 뒤 부셰롱이다. 그는 몇달 전 갈리마르 출판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다가 채택돼 빛을 본 소설 '짧은 뱀'으로 프랑스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부셰롱은 2차까지 간 심사위원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15표를 얻어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마리 니미에(작품 '침묵의 여왕')를 6표 차로 따돌렸다.

부셰롱은 28년 7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엘리트 관료들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지만 공직과는 인연이 없었다. 항공회사인 아에로 스파시알에서 20년 동안 일하면서 영업부장까지 승진했고, 통신회사인 알카텔에서는 15년간 근무하며 자회사 사장까지 지냈다. 에너지그룹에서 석유와 석탄 구매 업무를 맡기도 했으며, 은퇴 직전에는 미국 텍사스주 3개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건설회사의 대표로 일한 경험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력이 그의 소설에 기름진 토양을 제공했던 것 같다. 수상작 '짧은 뱀'은 오늘날의 그린란드를 닮은 북대서양의 동토로 이주한 중세 유럽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허구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수백년이 지나도 이들 이주민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한 성직자가 '짧은 뱀'이란 이름의 배를 타고 현지로 가 폭력에 물든 유럽인들을 목격하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국제적 분쟁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연상시키는 우화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날 발표된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처음으로 올해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 시즌이 시작됐다. 다음달 3일에는 페미나상이, 8일에는 공쿠르 상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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