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에 선방 마련한 현각 “법정 스님 복 남기고 가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해 독일 뮌헨에 선원을 꾸린 현각 스님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간절한 물음이 바로 화두”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푸른 눈의 현각(46) 스님이 돌아왔다. 1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에서 1년 반 만에 법문을 했다. 법회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베스트셀러 『만행』으로 유명한 그는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을 나와 한국의 숭산(1927~2004)스님을 만나 출가,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현각 스님은 지난해 6월부터 독일 뮌헨에서 조그만 선방을 꾸리고 있다. 다섯 평 남짓한 방에서 40여 명의 독일인이 번갈아 가며 선(禪)수행을 한다. 현각 스님은 “뮌헨의 물가가 무척 비싸다. 여름부터는 음식점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원을 꾸릴 생각이다. 스승인 숭산 스님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땐 세탁소에서 일하셨다”고 말했다. 설거지는 수행하고 집중하기에 좋은 일거리라고 했다.

그는 왜 독일로 떠났을까. 여기에 대한 답도 했다. “한국에선 제가 잘못했다.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초청받으며 대접을 받았다. 그건 ‘현각 쇼쇼쇼’였다.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멀리 가서 고생을 하고 싶었다. 수행자는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야 하니까.”

현각 스님은 14일 귀국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 다음날이었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도 꺼냈다. “수 차례 ‘자격이 안 된다’고 사양했지만 법정 스님이 ‘이 일은 꼭 수행자가 해야 한다’고 부탁해 스님의 책 『깨달음의 거울:선가귀감』을 영어로 번역한 적도 있다.”

그는 법정 스님의 입적을 ‘살아있는 법문’에 빗댔다. “지난주 법정 스님 가시는 일로 우리는 굉장한 복을 받았다. 눈물이 날만큼 엄청난 복을 말이다. 그분은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가신 분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걸 보여주셨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 미국에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물건을 비우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게 핵심이다.”

현각 스님이 뮌헨에 세운 선방의 이름은 ‘불이선원(不二禪院)’이다. 그는 ‘불이(不二·둘이 아님)’에 방점을 찍었다. “독일은 20년 전까지 동·서로 갈라진 나라였다. 한국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둘’이었다. 그런데 독일은 20년 전에 ‘하나’가 됐다. ‘불이’가 됐다. 그래서 독일에 세운 ‘불이선원’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독일 사람들의 수행 태도가 궁금했다. 현각 스님은 거기에 좋은 점수를 줬다. “독일 사람은 절대자를 세워놓고 기도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교를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의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이 스님의 책이 어떻고, 저 스님의 책이 어떻고 하면서 논쟁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누구인가’하는 화두를 들고 정진만 하는 스타일이다. 한번은 처음으로 철야정진을 했는데 선방이 꽉 찼다. 밤새 정진하고 눈 내리는 새벽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는 ‘또 철야정진 안 하느냐’고 수시로 묻는다.”

숭산 스님도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은 불교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그래서 공부를 안 한다. 그런데 서양 사람은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래서 실천(수행)만 한다.” 현각 스님은 20일 독일로 출국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