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감독-선수 수직관계 한국축구 발전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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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장면 하나.

1998년 6월 19일 마르세유 벨로드롬 경기장. 다음날 네덜란드와 프랑스월드컵 E조 예선 두번째 경기를 앞둔 한국팀이 경기장 적응훈련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팀 차범근 감독의 요청에 따라 훈련은 비공개로 실시됐다. 외국은 물론 한국 취재단도 훈련을 볼 수 없었다.

멕시코와 1차전에서 1 - 3 역전패를 당하며 하석주가 퇴장당하는 수모와 불명예를 겪은 한국팀은 최용수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해 잡음이 나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침통했다. 훈련장에는 '뻥.뻥' 볼소리만 울려 퍼졌다.

장면 둘.

한국팀의 훈련이 끝나고 30여분 뒤 네덜란드팀이 같은 장소에서 훈련했다. 한국기자단을 포함해 외신기자들에게 훈련모습을 보여주고 인터뷰 등도 자유스럽게 허용했다. 준비운동에 이어 6명이 한조를 이뤄 4명이 볼을 돌리고 2명이 볼을 뺏는 훈련(일명 4대 2 훈련)은 웃고 소리치는 흥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한국 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최근 프랑스 일간지 레퀴프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국대표팀을 지도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밝혔다.

그는 "감독의 지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감독에게 필요 이상으로 복종심을 갖고 있다. 좀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또 "언어 소통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지적하고 지시를 해도 의견이나 반응이 없다. 활발하게 이야기하며 훈련과 경기를 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겠다" 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긴장하고 주눅들어 큰 경기를 망치는 일이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다" 고 희망했다.

왜 한국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이 지적했듯이 필요 이상의 복종심을 앞세울까. 원인은 성장과정에서 감독과 선수간에 형성된 잘못된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다.

축구를 한창 배우는 학창시절 감독은 이미 무서운 인물로 설정된다. 심지어 국가대표팀에서조차 감독이 선수들을 구타해 물의를 빚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정도다. 이는 지도자와 선수간 대화의 단절로 이어질뿐 아니라 선수는 감독을 보면 피하게 된다.

대부분 한국축구팀의 감독과 선수 관계는 종속적이다. '지도자는 왕' 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벙어리' 선수들을 양산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잘못 말했다가는 '건방진 놈' 으로 낙인되면서 주먹과 발길질, 혹은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보복도 뒤따른다. 월드컵과 주요 국제대회가 끝날 때마다 국제축구전문가들이 "한국축구는 로봇축구" 라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수와 감독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견해의 차이가 있을 경우 '동업자' 입장에서 자연스런 토론을 통해 축구를 이해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가는 노력이 선진 축구로 가는 지름길이다. 축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발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지 축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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