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택지지구 빈 아파트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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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 업체가 지정한 입주기간이 끝난 지 한 달이 다 됐지만 빈 집이 많은 수도권 한 택지지구 아파트.박원갑 기자

"택지지구인들 쏟아지는 물량을 견뎌낼 재간이 있겠습니까."(경기도 동두천 중개업자 K씨) 지난 24일 경기도 동두천 송내.생연 택지개발지구는 썰렁했다. 휴일인데도 이사를 오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었다. 송내지구 주공 1, 2단지(2700여가구)는 입주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40% 이상 비어 있다. 업체 측이 지정한 입주마감일(21일)이 끝난 생연지구 부영 5차의 입주율은 30%를 넘지 못한다. 아파트입구의 한 중개업자는 "살던 집이 빠지지 않는 데다 경기 불황으로 이동 수요가 줄어든 게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새로 입주하는 수도권 택지지구가 텅텅 비고 있다.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수요층이 많은 택지지구도 비수기에 입주가 몰리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잔금을 못내 연체이자를 무는 계약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전셋값도 크게 떨어져 일부 단지는 분양가의 30%대에 그치고, 분양가보다 500만~1000만원 싼 매물이 나오지만 거래가 뜸한 곳도 있다.

올해 인천지역 입주량의 60%(1만695가구)가 몰린 서구 일대 택지지구는 입주한 지 3~4개월이 지나도 빈집이 수두룩하다. 검단2지구 금호어울림은 업체가 지정한 입주기간이 지난 지 석 달이 넘었지만 입주율은 70%, 지난 8월 말 입주기간이 끝난 마전지구 풍림 아이원도 60%를 밑돈다.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입주율이 이처럼 낮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관리비가 들어오지 않아 직원 월급도 제때 못 준다"고 말했다.

올해 경기도 입주량의 10%가 넘는 화성(1만3786가구) 일대 택지지구도 홍역을 앓고 있다. 태안지구 우남 퍼스트빌 1차는 입주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입주율은 69% 선이다. 지난 20일로 입주기간이 끝난 태안지구 주공 5단지의 경우 연체이자를 무는 사람도 50%에 이른다. 한 중개업자는 "지난 5~6월 입주한 단지조차 비어 있는 집이 10~20%에 이를 정도"라며"가수요가 많았던 곳일수록 입주율이 낮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집들이가 시작된 남양주 평내.호평지구도 빈집이 많이 생겨난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평내지구 신명, 호평지구 효성의 입주율은 33~46%에 그치고 있다. 인근 성실공인 박종길 사장은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분위기는 나아졌지만 거래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용인 죽전지구에선 최근 싼 전세가 팔려나가면서 입주율이 다소 높아졌지만 대형 평형 단지는 여전히 저조한 편이다.

입주가 몰리면서 전셋값이나 분양권 값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인천 서구 마전지구 대원 33평형은 3500만원, 인근의 풍림 33평형도 3500만~4000만원이면 전세를 구할 수 있다. 행운공인 김영진 사장은 "신규 입주 택지지구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주변 아파트나 다가구 주택 전세시장도 덩달아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분양권도 인천 서구.동두천 등지에선 분양가보다 500만~1000만원 싼 가격에 매물이 나온다.

입주율이 떨어지면서 주택업체도 비상이 걸렸다. 입주율이 낮으면 투자 자금 회수가 늦어져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입주율 높이기에 사운을 걸고 있다. 입주 전 아파트 내부의 주방.유리창.바닥을 청소해주거나 제때 입주하면 계약금 이자를 환불해주는 곳도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전셋값과 매매 값이 추가로 급락할 가능성은 작지만 당분간 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부동산 114에 따르면 경기.인천 등 수도권 입주 물량은 올해 13만4000여가구로 피크를 이룬 뒤 내년 12만가구, 2006년엔 10만가구로 줄어들 것으로 집계됐다.

박원갑 기자

*** 실수요자 구입 어떻게

준공 후 나오는 급매물 노려야

새 아파트 입주율이 저조하면서 택지지구에도 시세보다 싼 매매.전세 물량이 많이 나온다. 실수요자는 싸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요즘 택지지구처럼 대단지에서 새 아파트를 사거나 전세를 든다면 입주 전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

종전에는 입주 시작 2~3달 전부터 값이 올랐으나 요즘엔 준공 시점까지 느긋하게 기다려도 된다.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 등의 좋은 조건을 이용했던 투자 수요가 입주일이 다가오면서 매매나 전세물량을 한꺼번에 내놔 값이 내리기 때문이다.

특히 준공 후에는 잔금을 내지 못한 아파트 중 연체료 부담 때문에 시세보다 1000만~2000만원 이상 싸게 내놓는 급매물도 적지 않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종전에 살던 집이 안 빠져 어쩔 수 없이 내놓은 물건과 내년부터 시행될 종합부동산세 및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조치를 피하려는 다주택자의 물건을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싸다고 해서 무조건 덤벼서는 안 된다. 공급이 많아 시세가 잘 오르지 않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 전세의 경우 계약하기 전에 집주인의 대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대출금이 많을 경우 나중에 경매처분되면 전세금을 날릴 수 있다.

요즘 입주하는 아파트는 중도금 60%를 포함해 계약금 10%까지 추가로 대출해준 경우가 많아 대출금이 분양가의 60~70%에 달한 곳도 있다. 반면 전셋값은 대부분 분양전 시세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쳐 집주인의 대출금 상환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대출이 적거나 없는 곳에 전세를 드는 게 안전하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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