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과서 우향우] 5·끝 '소설' 쓴 고대 한·일 관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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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일본 문부과학상은 지난 4일 이미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재수정 문제에 대해 "명백한 오류가 없는 한 재수정은 불가능하다" 고 밝혔다. 그런데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만든 역사교과서의 고대 한.일관계사와 관련된 서술에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

첫째, 이 교과서는 '고구려는 반도 남부의 신라와 백제를 압박하였다. 백제는 야마토 조정(朝廷)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4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에 출병(出兵)하였다' 고 했다. 그러나 기원 4세기에 고구려는 신라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고, 백제와만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또한 백제가 왜국(倭國)과 통교를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광개토왕릉비문' 에 왜의 침략 사실이 나오기는 하나 이를 파견한 것이 야마토 조정인지, 야마토 조정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런 것이 4세기에 존재했는지 등이 모두 분명치 않다. 따라서 이를 당연시한 서술은 명백한 왜곡이다.

둘째, 그 교과서에서는 위의 문장에 이어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부의 임나(任那.加羅)라는 곳에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고 하였다.

이 문장은 지난 심의본에 비해 약간 후퇴한 표현이나, 내용상으로는 기원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존재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를 나타내고 있다. 근래의 연구성과로 볼 때, 요즘 일본 고대사학자 중에도 이런 기술에 수긍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열명 중 여덟이나 아홉이 부인해도 명백한 왜곡이 아니라고 할 것인지 일본 문부과학상에게 묻고 싶다.

셋째, 그 교과서에서는 "바다를 건넌 야마토 조정의 군세(軍勢)는 백제와 신라를 도와 고구려와 격렬하게 싸웠다. …고구려는 백제와 임나를 지반(地盤)으로 한 일본군의 저항으로 인해 정복은 이루지 못하였다" 고 했다.

여기서도 기원 4세기 말 5세기 초에 왜군이 백제와 신라를 도와 고구려와 싸웠다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광개토왕릉비문' 『삼국사기』『일본서기』 등 모든 기록이 당시의 고구려는 신라의 우군이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고구려가 일본군의 저항으로 인해 정복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도 아무런 증거 자료가 없다.

'광개토왕릉비문' 의 기록으로 볼 때, 왜군은 항상 고구려에 무참하게 패배하는 존재일 뿐이고 변변한 저항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가 백제와 가야를 정복하지 못한 것은, 해당 지역에 살던 백제와 가야 사람들 자체의 저항 때문이고, 고구려가 이를 완전히 정복해 직접 지배하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 그 교과서에서는 "6세기가 되면 …고구려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지원국인 북위(北魏)도 조락(凋落)으로 향했다. …백제와 야마토 조정의 연계(連繫)만은 계속되었다. 신라와 고구려가 연합해 백제를 위협하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고구려는 북위와 많은 교통을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남조(南朝)의 국가들이나 중앙아시아 세력과도 교통하며 세력의 균형을 맞추었으므로, 북위가 고구려의 지원국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또한 6세기는 백제와 신라가 연합해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공동 대처하고 있던 시대이기 때문에, 신라와 고구려가 연합해 백제를 위협하던 시대였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새 역사교과서' 의 고대 한.일관계사와 관련된 서술은 거의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식민사관(植民史觀)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는 마치 근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후에 한반도를 위하여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일으켰다고 미화하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고대 시기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이 백제와 신라를 위해 임나에 군사 거점을 두고 고구려와 싸웠다는 식으로 역사를 조작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 기초 사실들의 왜곡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최근 50여년간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이루어낸 연구성과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김태식 교수 <홍익대.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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