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교육 4반세기] 7. 심각한 학력 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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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영어에서 'go(가다 : 기본형) - went(과거형) - gone(과거분사형)' 의 동사 변화는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배운다.

그러나 서울 A고교 1학년 한 학급 38명 중 'go' 의 과거형이 'went' 인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은 15명뿐이다. 그런가 하면 고교생이면서도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네 명 중 한 명 꼴이었다.

본사 취재팀은 고교 평준화 체제 이후 고교생의 학력 저하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교육계의 지적에 따라 일선 학교의 협조를 얻어 직접 테스트를 해봤다.

대상은 서울 강남북의 3개 고교 1, 2학년 1백10명.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과목의 중학교 과정 문제 10개를 제시했다.

이들 문제는 모두 지난해 중학교 1~3학년 중간.기말고사에 출제된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모두 맞힌 학생은 세명뿐이었다.

영어 단어 'go' 의 과거형을 정확히 쓴 학생은 절반을 조금 넘는 58명(52.7%)이었다.

18명(16.4%)은 아예 답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는 과거분사형 'gone' 이나 출처불명의 'wents' 'gosed' 'goed' 로 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정확히 쓰지 못한 학생도 26명(23.6%)에 달했다.

가장 오답률이 높았던 것은 '2x2+4x+2' 의 인수분해.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것인데도 65.5%인 72명이 제대로 풀지 못했다.

중학 교과서 예시문에 사용된 국어 수사법 '설의법(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의문문의 형태로 써 뜻을 강조하는 수사법)' 을 묻는 질문에는 69명(62.7%)이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중학교 1~3학년 과학 문제인 태양.지구.달의 순서 그림에서 월식이 일어날 수 있는 달의 위치를 찾는 질문에는 39명(35.5%)이 오답을 냈다.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하나를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따져야 한다' 는 설명문을 주고 여기에 해당하는 경제 용어를 쓰라고 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회 비용' 이라는 정답을 쓰지 못한 학생이 38명(34.5%)이다.

중국 한나라 이후 개척된 동.서양의 무역로인 '비단길' 을 모르는 학생이 19명(17.3%)이다.

고교 1학년생 76명에게 별도로 물은 '반지름이 r인 원의 면적을 구하는 공식(πr2)' 은 22명(28.9%)이, '물의 화학식' (H2O)은 13명(17.1%)이 제대로 쓰지 못했다.

서울 B고 李모(44)교사는 "인수분해는 커녕 구구단도 제대로 못외우는 고교생이 있다" 고 말했다.

서울 C고 金모(41)교사는 "연합고사가 없어져 중학교까지 입시부담이 없는 데다 과학고.외국어고에 우수 학생이 몰려 일반고는 상위권 학생의 성적도 전같지 않다" 고 말했다.

평준화지역의 고입 무시험 전형, 고교들의 내신 부풀리기 관행도 학력 저하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란 것이 일선 교사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입시전문기관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김영일 평가이사는 "올해 고3생의 경우 같은 문제로 모의고사를 봐도 지난해 고3들보다 20~30점이 떨어진다" 고 말했다.

그러나 학력 저하를 이른바 '열린 교육' 책임으로 돌리는 데는 반론도 만만찮다.

서울 D고 李모(52)교감은 "학력 저하는 선진국들도 골머리를 앓는 세계적인 현상" 이라면서 "영어.수학 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질과 재능이 실력으로 평가되는 특성화 교육을 확대해야 기초 학력에 대한 의욕도 높일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박성익 교수는 "학생들이 배울 지식정보의 양을 줄이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력을 기르는데 중점을 둘 수 있는 교육 환경개선과 교원의 질 향상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후남.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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