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탈리아 여인 실화 바탕 '베로니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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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실존 여성을 소재로 한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 의 원제는 '위험한 미인' (Dangerous Beauty)이다. 위험과 미인이란 두 단어에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베로니카' 는 사랑에 흠뻑 빠진 아름다운 여인의 위태로운 삶을 활달하게 그려낸다.

근대사회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한 16세기의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 상업.문화의 중심지. 중세의 기독교적 가치관이 강하게 남아 있던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베네치아는 기존의 사회윤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당시 베네치아의 평범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길은 고급창녀가 되는 것뿐. 그녀들은 도서관에서 학문을 익혔고, 귀족.관리들과 국사를 논했으며, 밤에는 유력 남성들의 정부가 돼 호사로운 생활을 꾸려갔다.

영화 속의 베로니카(캐서린 매코맥)도 그런 경우다. 어린 시절 사랑을 약속했던 귀족출신의 젊은이 마르코(루퍼스 스웰)가 다른 여자와 정략 결혼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고급창녀로 돌변한다.

남자를 즐겁게 하는 법을 하나하나 배우고, 도서관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등 최고층의 남성을 사로잡으려는 베로니카의 노력이 일단 관객의 눈길을 잡는다.

그녀의 장점이자 약점은 마르코에 대한 사랑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

영화는 이 남녀의 갈등과 화해, 주변의 시기와 편견, 그리고 당시 베네치아를 휩쓸고 지나간 터키와의 전쟁 등을 겹쳐놓으며 격랑의 세월을 몸 하나로 헤쳐간 한 여인의 인생역정을 펼쳐보인다. 마치 현대판 여성전사를 은유한 듯한 분위기다.

출중한 무술로 웬만한 남성은 간단하게 제압했던 '미녀 삼총사' 처럼 베로니카는 농염한 육체와 출중한 문재(文才)로 숱한 남성을 굴복시킨다.

하지만 그녀를 일종의 영웅처럼 묘사한 후반부에선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지금까지 베로니카에게 느꼈던 공감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사실적인 드라마가 갑자기 황당한 만화 비슷하게 끝나는 것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 을 각각 제작, 연출했던 마셜 헤르스코비츠와 에드워드 즈윅이 이번엔 서로 역할을 맞바꾼 게 특기 사항. 16세기 베네치아의 풍경과 의상을 꼼꼼하게 되살린 복고풍 화면이 수준급이다. 다음달 14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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