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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박근혜 정치’에는 왜 감동이 없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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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활약한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감동의 물결은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비켜가지 않았다. 스포츠가 그렇다면 정치는 어떤가. 우리 정치에 감동보다 염증이 넘쳐흐른다면 스포츠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물론 스포츠는 정치와 다르긴 하다. 스포츠는 운동선수들이, 정치에서는 정치인들이 주역이 아닌가. 그럼에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상대가 있고 승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의 속성을 설명하는 숱한 비유적 표현 가운데 하나가 운동경기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도 감동이 가능한데, 왜 그와 비슷한 정치에서는 감동을 찾아볼 수 없는가.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도 불감증에 걸려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아예 감동할 거리가 없어서인가.

이명박(MB) 대통령의 리더십만 해도 그렇다. 외국에서는 ‘수퍼비지(super-busy)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고 경제 살리기 등 실적도 빵빵한데, 왜 그의 정치적 리더십에 감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어떤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패배를 인정하는 명연설을 하면서 많은 국민의 마음을 적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투혼을 불사르는 전사의 경직된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포츠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에게 감동하는 것은 그가 메달을 땄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메달을 따기 전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흘린 땀과 눈물의 양을 넘어서는, 초인적인 어떤 일을 해낸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정치도 승자와 패자를 탄생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정치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면서도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감동의 예술’도, ‘악덕의 경연장’도 될 수 있다. 위대한 정치인이 되려면 승자건 패자건, 일반사람들의 승부의식을 넘어서는, 초인적이며 자기초월적인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에서 초인적이며 자기초월적인 행위, 즉 승자를 겸손하게, 패자를 의연하게 만드는 감동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용서와 화해다. 원래 용서와 화해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바이블의 경구를 떠올릴 정도로 종교적인 화두다. 그러나 그 용서와 화해가 감동의 정치적 화두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최근의 사례가 있다면 바로 남아공의 만델라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인빅터스’에서처럼, 만델라는 승자가 된 후 자신을 핍박한 백인들에 대해서는 물론 심지어 백인 선수들로 구성된 럭비 팀에 대해서까지 포용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런데 왜 한국정치에는 용서와 화해가 없는가. 백인과 흑인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니어서 그런가. 아니면 용서하기엔 가슴 아픈 일이 너무나 많아서인가. MB가 많은 실적을 올리면서도 국민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은 밀어붙이기만 할 뿐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박 전 대표의 말이 어느새 그 ‘매직파워’를 잃은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섭섭한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대선후보 경선 과정과 총선 공천파동에서의 앙금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는 있다. 세종시 문제에서 입장 차이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MB와 박 전 대표가 서로 용서가 없고 화해도 하지 못하는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한 ‘감동의 정치’는커녕 회한만이 가득한 정치가 될 뿐이다.

병원에 가본 사람은 흔히 느끼는 일이다. 의사는 비만 때문에 자신의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보고 “무얼 먹었기에 올챙이 배가 되었나”라고 조롱하거나, 지방간을 가진 환자에게 “간댕이가 부었다”라는 식의 거친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병원도 아닌 정당 내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을 주고받는 것은 상극관계를 확인하는 일일 뿐, 상생의 정신을 키우는 언행은 아니다.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가지고 다투는 정치에는 감동이 없다.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정치인만이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MB는 50%에 달하는 지지율을 가지고도 왜 국민적 환희가 없는지, 박 전 대표는 요즘 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지 새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