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제왕적 대통령' 발언 놓고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23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의 '제왕(帝王)적 대통령' 발언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李총재는 22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평가가 엇갈린다" 는 질문에 "(金대통령은)비판을 수용하지도, 권위주의적 야당총재의 입장에서 벗어나지도 못해 가부장적.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드러냈다" 고 비판했었다.

◇ "李총재는 '네로' "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아침 李총재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외국언론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을 음해하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유감" 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대통령이 제왕적 리더십을 행사한다면 지금처럼 야당이 사실이 아닌 것을 갖고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 며 "모든 인권기구가 한국을 자유국가로 규정하는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과거 정부에선 없었던 일" 이라고 되받아쳤다.

"제왕적 대통령은 한나라당 집권 때의 리더십" 이라는 말도 했다. 민주당도 "적절치 못한 표현" (金榮煥대변인), "李총재야말로 당내 반론을 허용치 않는 '네로' 총재" (金賢美부대변인)라고 가세했다.

◇ "학계도 쓰는 '용어' " =그러자 한나라당이 발끈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 '제왕적' 은 그간 학계와 정치현장에서 사용해왔던 말" 이라며 "李총재가 한마디 하면 공격.흠집내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李총재 공포증 때문 아니냐" 고 반박했다. 그는 민주당 김원기(金元基)최고위원의 15일 발언(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국회가 역할을 못한다' )도 끄집어내 "같은 집안에서도 나온 말" 이라고 꼬집었다.

李총재도 전날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계속했다. 그는 23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자원봉사단 발대식에서 "제왕적 통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정치를 위해 야당 때부터 체질을 만들어 가자" 고 강조했다.

李총재의 측근은 "李총재의 발언은 어제가 처음이 아니다" 며 근거도 공개했다. "제왕적 위상의 리더십으론 민주주의를 제도화할 수 없다" (1999년 4월 성균관대), "신권위주의 틀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비판까지 듣고 있다" (올해 2월 경남포럼) 등이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