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신변보호 요청 급증…'어깨 힘주는' 경호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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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A외국인학교 2년생인 프랑스 소녀 L양(7)은 지난 12일부터 경호원 두명의 손을 잡고 학교에 다닌다.

영화.애니메이션 배급사 대표인 아버지가 사설 경호업체 '예죽' 에 월 1백50만원을 주고 경호를 부탁했다. 불경기로 하청을 중지당한 한국인 업자 K씨가 두달 전부터 집(서울 한남동)과 회사, 딸의 학교 앞에서 "손해를 봤으니 돈을 달라" 며 피켓 시위를 하고 문을 두드리는 등 괴롭히고 있어서다.

L양의 아버지는 "여러번 경찰에 신고했지만 체포할 만한 혐의가 없다고 해 보디가드를 붙였다" 며 "비슷한 불안에 떠는 다른 외국인 기업가들도 많다" 고 말했다.

기업인들의 사설 경호가 부쩍 늘었다. 구조조정, 하도급 거래 중단, 채권채무 관계 등 경기 침체로 빚어지는 현상들이 늘어나면서 자신과 가족의 신변 위협 사례가 많아진 때문이다.

◇ 잇따르는 경호 요청=월2백여만원으로 경호원을 운전사로 쓸 수 있는 한국경호경비시스템(코세스)의 상품은 올들어 10여건이 팔렸다. 하루 15만원선인 기업인 단순 경호도 7명이 새로 계약했다.

관계자는 "구조조정으로 노사가 대립된 대기업.중소기업은 물론 주가 폭락에 따른 주주들의 항의와 사채업자의 협박이 적지 않은 벤처기업쪽도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벤처기업 E사 대표 S씨는 지난달부터 경호원을 붙였다. 지난해 말 수출 물량이 줄어 하청업체 몇곳과 거래를 끊자 한 하청업자가 지난달 사장실로 쳐들어와 흉기를 휘두른 뒤다.

◇ 흔한 풍경 된 주주총회 경비=주주총회장마다 사설 경호업체를 동원, 출입통제 등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됐다. 늘 충돌 소지가 있는 데다 구조조정 등으로 노사 갈등도 첨예해졌기 때문.

지난 한해 D사 등 5개 기업의 주주총회 경호를 맡았던 코세스는 올들어서만 5건의 주주총회에 인력을 투입했다. 경호업체 '에스텍시스템' 도 이달에만 10여건의 주주총회 경호를 맡았다.

◇ 호황 누리는 경호업체=예죽의 송영남(宋永男.42)대표는 "예년이면 비수기였을 1, 2월에도 전직원이 동원될 정도로 바빴다" 며 "연예인이나 내방 외국 인사가 주고객이었으나 최근 주주총회와 기업인 개인 경호 수요가 부쩍 늘고 있다" 고 말했다.

코세스도 인력이 달려 지난 15일부터 '침식제공, 기본급 1백만~1백10만원' 조건으로 아르바이트 경호원을 뽑고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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