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5월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늦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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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 대입 1학기 수시모집이 5월 20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대입열풍이 어느 해보다 일찍 불어닥치고 있다. 특히 올해 수능시험을 어렵게 출제할 것이라는 발표에 따라 1학기 수시모집에 많은 수험생이 몰릴 전망이다.

어떤 기관이 수시모집에 대해 대입 예비수험생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81%가 수시모집에 지원할 의사가 있고, 이들 중 45%가 고려대.연세대 등의 5월 수시모집에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5월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경쟁적으로 조기에 선발할 수 있고, 고3 학생들은 대입지원 기회를 일찍 얻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9~10월 수시모집 합격자들이 다른 학생들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면학분위기를 흐트러뜨렸고, 그들에 대한 생활지도도 불가능해 출석일수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오전 수업에만 출석하도록 한 학교들이 있었다.

올해에도 이런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올해엔 1학기부터 수시모집을 하므로 문제가 더 많이 생길 것으로 교사.학생.학부모들은 우려하고 있다.

교사들은 교과지도에 집중해야 할 1학기 초부터 수시모집 진학지도, 논술.면접지도, 원서작성 등 대학입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3 교과수업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렵거나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고3 학생들도 예년이면 학업에 가장 열중하는 1학기 초부터 대입시험이 임박했다는 초조감에 휩싸여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 수업분위기가 들뜨게 마련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교 3년간에 걸쳐 공부하도록 돼 있는 교과학습과 인성교육의 교육과정을 도외시하고, 2학년까지 학습한 결과만 놓고 대입선발을 하므로 고등학교 교육이 사실상 2학년으로 끝나게 돼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올해 대학입시생들은 5월 수시모집을 필두로 내년 1월 정시모집까지 거의 1년 내내 대입시험에 시달려야 한다. 또한 고2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대입시험이 고작 1년밖에 안남았다는 입시부담감과 긴장감에 싸이게 된다.

지난해에도 겪은 바 있지만 수시모집을 대비한 일부 학교의 내신성적 부풀리기, 각종 경시대회 열풍, 학생들의 논술.면접과외 열풍이 고교 저학년까지 확산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5월 수시모집 합격생들도 남은 고3 기간에 능력과 적성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게 된다.

따라서 고교 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수시모집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대학입시는 9월 이후에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당국이나 대학은 5월 수시모집의 적절성 여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올해 5월 수시모집은 고3 학생들에게 예고된 것이니만큼 교육과정에 따라 고3 학생들의 수업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5월 수시모집의 합격자 발표시기를 9월 수시모집 직전으로 늦추든가, 5월 수시모집 합격자들의 고3 학업성적을 반영해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부 합격제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들이 5월 수시모집 합격자들에게 미국의 '어드밴스드 플레이스먼트(Advanced Placement)' 제도와 비슷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대학이나 사이버대학에서 교양 또는 전공기초 과목을 수강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당장 시급한 것은 대입 1학기 수시모집의 시행에 따라 고교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가 무너지는 것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박성익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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