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조창환 '하프-헨델 하프 협주곡 B장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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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천상의 연잎 흩어지는 물방울

은빛 유리종을 매단 마차들의 행렬

소년은 아침 이슬 속에 맺힌

일곱빛깔 설레임을 껴 안고

하늘에서 땅으로

뻗어내린 덩굴풀

여린 새순의 피리 소리 흔들며

아르테미스의 숲을 맨발로 걷는다.

초록빛 풀향기가 출렁이며 따라오고

황금빛 별가루가 반짝이며 흩어지고

녹은 촛물들이 은빛 고리로

분수처럼 튕겨나는 울림들의 아침

- 조창환(1945~) '하프-헨델 하프 협주곡 B장조'

조창환 시인은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 일찍이 음악만을 시로 풀어쓴 시집 '파랑 눈썹' 을 간행한 바 있다. 인용시 역시 '헨델 하프 협주곡 B장조' 를 시로 해석한 작품이다. 그러나 비록 언어를 매개로 한 것이긴 하지만 이 시는 한편의 그림이기도 하다.

유리종을 매단 마차가 지나고 맨발로 걸어가는 소년이 있으며 황금빛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새벽의 숲을 환상적으로 묘사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마치 한개의 추상화를 감상하듯 헨델의 음악을 전제하고 그저 그것을 한편의 그림으로 느껴보기 바란다.

오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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