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성남 연고지 파문, 대타협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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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축구는 계속됐다. "

최근 옛 유고연방의 크로아티아가 고향인 샤샤(성남 일화)를 만났다. 세르비아계인 그와 가족은 1990년대 민족.종교 분쟁으로 아파트와 차 등 전 재산을 포기하고 현재의 유고슬라비아로 이주했다.

한국인으로 귀화를 추진하고 있는 샤샤는 "종교 문제로 축구가 방해받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적인 계산 속에 종교문제를 들먹이며 구장 사용에 제동을 거는 성남시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종교가 다르면 월드컵에 오지 말라는 것과 같다" 며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수퍼컵에 이어 아디다스컵이 시작되는 마당에 불거진 성남 일화의 문제는 전세계 축구 관계자들과 축구 매니어들에게 한국축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 문제는 지난 2월 5일 김병량 성남시장이 성남시 축구협회와 축구 관계자 간담회에서 성남 일화 연고지 철회를 공식 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성남 일화 서포터스(천마불사), '붉은 악마' , 중.고연맹, 한국OB축구회 등의 반박성명 발표와 성남시장과의 수차례 면담이 이어졌고 성남 일화는 연일 "리그 불참, FIFA 제소" 등 볼멘 목소리를 토해냈다.

프로축구연맹과 성남시가 내놓은 타협안인 '2002월드컵까지만 한시적 연고지 인정' 과 '운동장 사용 신청을 성남 일화가 아닌 연맹이 한다' 는 것도 문제 해결의 해법은 아니다.

성남 일화가 리그 중도 불참이나 팀 해체 등 강수를 둔다면 이는 한국축구의 뿌리가 흔들리는 큰 사건으로 확대될 것이다.

물론 월드컵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은 뻔한 이치다. 또 어떤 결론이 나건 종교와 스포츠, 혹은 정치와 스포츠라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라는 선례를 남기게 된다. 때문에 고민하고 양보하고 대타협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우선 축구협회에서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정몽준 회장과 집행부는 이 문제를 긴급 이사회 안건으로 다뤄 심의하고 필요하다면 문화관광부 김한길 장관과 프로연맹 유상부 회장, 월드컵조직위 이연택 공동위원장 등이 나서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로서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국가.정치.종교.인종을 초월해 월드컵을 세계 화합의 장으로 연출하는 것이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월드컵 이념과 정신의 계승이다.

러시아 정교를 믿는 샤샤가 헤어질 때 필자에게 한 말을 성남시와 일부 종교단체에 그대로 전한다. "나에게도 하느님은 소중하지만 축구는 스포츠일 뿐이다. "

신문선<축구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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