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 역사·일화 소개한 '월스트리트 1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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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 월스트리트는 욕망의 거리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투자자들과 거대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기업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큼직한 '떡고물' 을 챙기려는 중개상들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오가는 그 '황소와 곰의 싸움터' (주가의 오르내림을 황소가 뿔로 치받고 곰이 앞발로 내리치며 싸우는 모양에 빗댄 표현)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타협하며 새로운 시나리오를 엮어낸다.

월스트리트의 지난 한 세기 역사를 담은 신간 『월스트리트 100년』은 미 주식시장에 대한 입문서인 동시에, 바로 그런 인간 군상에 대한 흥미진진한 다큐드라마다.

또 미국 정부와 의회가 그 욕망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이 거리를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만들어온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초만 해도 주변부 국가였던 미국이 어느새 국제무대의 패자(覇者)로 등극하게 된 역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성공적인 저작이다.

뉴욕증권거래소가 비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1792년 상품과 유가 증권 등을 사고 팔던 장외거래인들이 월스트리트의 버튼우드(미국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협정을 체결한 때부터. 그러나 20세기에 일어난 월스트리트의 비약적인 발전은 19세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전설적인 자산가 J P 모건이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으로 카네기 철강을 인수하고, 뉴욕증권거래소가 현재의 위치인 브로드스트리트에 자리를 잡은 1900년대 초부터 10년 내지 20년 단위로 역사적 장면들을 포착해 나간다.

29년의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과 50년대 한국전 특수(特需), 70년대 유가파동 등을 거쳐 다우지수가 10, 000을 기록한 99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투자은행 상담가이면서 무엇보다 이야기꾼인 저자는 많은 숨겨진 일화들을 때로는 사진 설명 한 줄로, 때로는 조그만 해설박스를 덧붙여 소개하면서 이를 미 주식시장의 큰 흐름과 연결시키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1백50여장의 흑백 사진과 포스터 등은 이 책의 자료적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월스트리트' 로 상징되는 미 자본주의의 비판적 해부까지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공허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 분명히 깨닫게 되는 사실은 월스트리트 역시 비밀거래.주가조작.거품활황.소액주주운동 등 우리가 요즘 겪고 있는 일들을 똑같이 겪었다는 것, 그러나 우리와 달리 엄정한 규칙의 적용과 집요한 의회 청문회 활동 등을 통해 많은 '거물' 들을 철창으로 보냈고 지금도 끊임없이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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