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사형제 철폐 등 EU 요구조건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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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터키가 유럽연합(EU)의 일원이 되기 위한 국가개혁작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터키 정부는 19일 EU 가맹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형제도 폐지 등을 골자로 한 대대적 국정개혁안을 발표했다. 만약 터키의 EU 가입이 성사되면 EU가 이슬람 문화권에 처음으로 문호를 여는 것이 된다.

◇ 개혁안 발표〓메수트 일마즈 부총리는 19일 기자회견에서 ▶사상 및 표현의 자유 확대▶고문 금지▶인권존중에 기초한 법집행▶사형제도 철폐▶교도소 환경개선▶쿠르드족 거주지인 남동부에 대한 비상조치 해제 등 개혁조치를 5년 이내에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1백여개의 법률을 개정해야 할 만큼 광범위하다.

이는 EU가 1999년 터키를 가맹후보국으로 승인하면서 정식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건 조항들이다. 이스마일 쳄 터키 외무장관은 오는 26일 브뤼셀을 방문, EU 각국 지도자들에게 터키 정부가 마련한 개혁조치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다.

◇ 걸림돌은 없나〓건국 이래 꾸준히 서구화 정책을 추진해 온 터키는 EU 가입을 최대 국가 과제로 삼고 있다. 52년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정식회원국이 됐지만 EU 가입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인권보장과 경제발전 수준이 EU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쿠르드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터키 정부는 소수민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지만 유럽 국가들은 이를 인권탄압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개혁안에서도 쿠르드어(語) 교육과 방송 금지조치에 대한 해제는 빠져 있다.

또 인접국이면서 키프로스 분단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그리스의 반대도 터키의 EU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EU 가맹 자격이 없다" 는 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게다가 터키 군부와 이슬람 원리주의자 등 국내 보수파들의 일방통행식 서구화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연립정부의 핵심세력 중 하나인 민족주의행동당(NHP)은 쿠르드족의 권리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터키 리라화(貨)의 급락을 야기하고 있는 최근 재정위기도 터키의 EU 가입을 위한 개혁안의 진행에 차질을 빚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EU 확대의 우선 대상은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될 것이며 터키의 가입엔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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