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개혁 한건주의가 위기 주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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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20일 "정부가 큰일 났다" 고 말했다. 이날 아침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다. 그는 "이대로 두면 정부 능력과 의지로는 수습이 안된다. 야당으로서 길을 제시해야 한다" 고도 했다.

李총재는 특히 "먼저 (목표를)설정하고 한건 하는 식으로 개혁하니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 며 정부의 개혁 추진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의료보험 재정과 의약분업 논란에 대한 야당의 대책은.

"의약분업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시범실시부터 하자고 했지만 철벽이더라. (이번 사태는)기본이 안돼 터진 것이다. 부분 손질로는 한계가 있다. 재검토해야 한다. "

- 야당이 국정 표류라고 주장하는데.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곧 잘된다' '야당이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고 하지만 의보 재정 파탄으로 심각한 사태가 오고, 교육도 망국(亡國)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경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개혁의 근본철학.방법 등 기본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덮어버리거나 돈을 풀어 해결하는 식으로는 안된다. "

이날 한 당직자는 "이제 여권의 '강한 정부론' '강한 여당론' 은 쑥 들어가게 됐다" 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교육.경제 등 쟁점들이 줄줄이 불거질 것" 이라며 야당이 수세에서 벗어나 정국 주도권을 잡을 것임을 장담했다.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오후 들어 더 긴박해졌다. 李총재의 지시로 소집된 긴급 총재단.지도위원 연석 회의에서는 ▶내각 총사퇴와 전면 개각▶金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 국정 전념을 요구했다. 일부 참석자는 "金대통령을 탄핵소추해야 할 상황" 이라는 주장도 폈다고 한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최근 상황은 장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지난 3년간 국정을 이끌어 온 金대통령의 국정수행 혼란에서 야기된 총체적 현상" 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한나라당에서는 "지금의 호기(好機)를 장기적인 정국관리로 연결시켜야 한다" 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회의에서 李총재는 "잘됐다는 심정을 가져서는 안된다" 며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면 거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이라는 대목을 발표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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