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한국무지, 한국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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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즘 주미(駐美)한국대사관과 특파원단, 미국 정치를 연구하는 한인 학자들 사이에는 일부 미국 인사들의 한국에 대한 무지와 무성의에 대해 불쾌감이 적지 않다.

우선 오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잘못된 지식을 드러낸 사람들은 하원 국제관계위 부위원장 크리스토퍼 스미스(뉴저지)의원 등 하원의원 세명이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5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金대통령에게 한국정부의 '언론자유 훼손' 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했다.

의원들이 거론한 언론사 세무조사의 정치성이나 햇볕정책 비판론자에 대한 압력같은 내용 자체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세계 지식인이 공동으로 방어해야 하는 가치란 점에서 적잖은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문제는 일국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면 마땅히 갖췄어야 할 신중함이나 정확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세 의원은 대한민국의 영어 호칭을 엉뚱하게 '남한공화국(Republic of South Korea)' 이라고 적었다. 편지를 보내면서 받는 이의 이름을 틀리게 쓴 꼴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한국 헌법에 대한 놀랄만한 무지다. 그들은 마지막 단락에서 "2002년 대선시간표가 변경되거나 혹은 당신이 한 차례 더 대통령 임기(another term as President)를 추구할 것인지 여부를 명확히 밝혀달라" 고 요구했다.

이는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 는, 다시 말해 한국대통령이 단선제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내각제 개헌을 암시했다면 'President' 라는 표현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무성의 사례로는 지난 8일 金대통령을 초청한 미 기업연구소(AEI) 오찬모임이 꼽힌다. 1백50여명이나 초대된 데다 金대통령에 대한 위해(危害)가능성이 결코 없다고 할 수 없을 텐데도 경호를 책임진 '비밀경호' 팀은 가장 기초적 장비인 금속탐지기 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연구소 역시 참석자들에게 입장표를 나눠주면서 신분을 확인하지 않았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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