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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성패, 우리 하기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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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공정선거, 정책선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각급 선거관리위원회는 8장의 투표용지를 차질 없이 제공하며, 용지에 이름이 적힐 후보자들의 정책경쟁을 관리해 나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4년 전 매니페스토운동을 제안하며 퇴행적 선거관행들을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나가려는 매니페스토 관련 시민단체들 또한 지난해 10월부터 ‘2010 시민 매니페스토 만들기’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글자 그대로 눈과 코를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진 사람들이 선거관리위원회 임직원들이다. 그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명함에 예쁘게 적혀 있는 문구가 ‘민주주의 꽃, 선거’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업무를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기관이 또 어디 있을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문구다. 문제는 이 꽃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다. 꽃을 피워낼 화단에 해당될 공직선거법을 비롯한 외형적 틀은 이미 잘 정비돼 있다.

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예비후보자의 홍보물은 100분의 50 이상의 면수에 선거공약 및 이에 대한 추진계획으로 각 사업의 목표·우선순위·이행절차·이행기한·재원조달 방안을 게재하여야 하며(제60조의 3), 공약집을 발간하여 통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할 수 있다(제60조의 4).

또한 선거공약서 1종을 작성해 배부할 수 있으며(제66조), 언론기관과 단체 등은 정당·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에 관하여 비교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제108조의 2). 민주주의 꽃을 아름답게 피우기 위한 남은 과제는 정당과 후보자들이 풀어 나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다음 두 가지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당내 경선과정을 민주적이며, 정책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하여 선거일 60일 전인 4월 3일까지는 모든 후보자를 유권자인 지역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벼락공천으로 유권자에게 큰 혼란을 주고 무려 54%의 국민들을 투표장 밖으로 몰아낸 재작년 18대 총선의 악몽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 각 정당에서 발표하는 공천 일정을 보면 지난 악몽이 되풀이될 것만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정당은 현재 검토하고 있는 공천 일정을 앞당겨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검증시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4월 말께의 공천 일정을 4월 초로 변경해야 한다. 민주경선, 정책경선, 조기공천만이 지역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정당과 후보자들이 지방선거 매니페스토를 발표해야 한다. 중앙당과 시·도당의 매니페스토와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의 매니페스토가 조화롭게 작성되어 유권자인 지역주민들에게 제시돼야 한다.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없이 ‘백지 위임’을 강요하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선과 함께 사라지는 한 줄짜리 공약, 선거일 3~4일 앞두고 뻥 터지듯 등장하는 급조공약, 자신들이 공천한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당의 공약이 제각각이던 부조리를 모두 던져버려야 한다. 바른 공천과 매니페스토 발표만이 정치와 정당에 등을 돌린 국민들을 다시금 얼굴을 돌려 정치와 정당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여기까지 찬찬히 글을 읽은 분이라면 짐작하실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은 매니페스토 선거의 실천이다.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주의와 신뢰공동체를 지향하는 매니페스토 선거는 4년 전, 민선 4기 지방선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주권재민의 원칙 아래 주권자인 지역주민들이 선거를 주도해 나가면서 정당과 후보자, 그리고 지역주민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매니페스토 선거는 참다운 지방자치가 실현되도록 만드는 든든한 토대다.

6월 2일 매니페스토 선거를 위해 지역주민과 정당, 후보자, 언론과 시민사회 등 모두의 관심과 노력을 기대한다.

유문종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