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미국무 말바꾸기 "도대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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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여러 갈래 해석이 얽혀 빚어진 혼선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워싱턴을 떠나기 전날인 8일(현지시간)에도 계속됐다.

金대통령이 도착한 지난 6일 북한 미사일 제안의 '유망성' 을 강조하며 한.미 대북포용 공조의 길을 닦았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8일엔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출석해 부정적 측면을 역설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폭군형 독재자(despot)' 로 호칭하고 북한 체제는 개방되면 결국 붕괴될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았다. 제네바 합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상회담 공동발표문은 '계속 유지' 를 못박았는데 상원 청문회에서는 재검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국무장관의 입은 공화당 신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래서 한국.일본 등 세계는 물론 미국 언론도 갈지자 걸음을 걷는 듯하는 파월 발언의 "진의가 뭐냐" 고 촉각을 세운다.

워싱턴의 한반도 및 외교문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파월이 말을 계속 바꾸고 강온탕을 왔다갔다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일관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파월이 6일 클린턴 행정부가 남겨 놓고 떠난 곳에서 시작함으로써 북한을 포용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미 행정부 내에서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엄연한 사실" 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정상회담 후인 7일 파월이 기자들에게 "북한은 명백한 위협이며 미국의 대북협상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은 사실이 아니다" 고 답한 것에 대해서도 "파월의 언급은 공화당 정권의 기본인식이며 협상의 필요성과는 별개의 문제" 라고 해석했다.

그는 8일의 '폭군형 독재자'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 문제 제기는 상원 청문회가 국무부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니 만큼 파월이 정상회담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기본적인 대북관을 피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월의 제네바 합의 재검토 가능성 언급에 대해 주미 한국대사관의 관계자는 "공화당 일각에서 경수로 대신 재래식 원전을 짓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는 만큼 실무장관으로서 일단 문을 열어둔 것" 이라고 풀이했다.

다른 시각은 파월이라는 탑(塔)으로 상징되는 행정부 내 대북팀이 아직 성숙된 체제를 갖지 못해 혼란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동아태담당 차관보로 임명된 제임스 켈리는 아직 상원 인준을 받지 못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 같은 전문 특사도 없어 국무부의 대북 라인이 붕 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무장관은 진의를 표현하면서도 오해나 파동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더군다나 파월은 군인 출신이므로 이 부분에 더 많은 고려가 요구되는데 그가 아직 충분한 보좌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많다.

한 소식통은 "파월은 정상회담 전날인 6일 '우리의 대북정책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고 말했는데 ▶대북협상의 재개▶미사일 문제의 검증 등 각론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한.미간의 시각차이를 잘 알고 있는 국무장관이라면 발언의 톤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고 지적했다.

미국 신문 USA투데이는 8일자에서 "파월 장관은 6일 북한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7일 정상회담 후에는 다른 행정부 정책을 보였다" 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파월은 외교쪽으로 기우는데 행정부 무게중심은 과거보다 오른쪽(강경론)으로 기울었다" 며 행정부 내 균열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혼선 여부에 대한 이같은 두 갈래 시각을 접하고 있는 소식통들은 "파월 장관 등 고위관리를 지켜볼 때는 단어 하나 하나보다는 전체적인 동선(動線)을 주목해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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