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방송 FM을 듣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지난 2일의 국악방송(FM 99.1㎒)개국은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다. 가청 지역이 수도권에 국한돼 있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잖지만 하루 21시간 동안 국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국악방송(http://www.gugakfm.co.kr)의 장점은 그동안 FM이나 TV에서 푸대접받아온 우리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편성을 보면 교내 방송같은 진행에다 청취자들의 생활 리듬에 음악이 뒤쫓아간 흔적이 역력하다. 시간대별로 제목이나 진행자만 다를 뿐 음악적 구성 면에서는 전통과 현대, 정악과 민속악, 성악과 기악이 뒤섞여 언제든 거의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다.

'아침사랑' (오전 7~9시) '창호에 드리운 햇살' (오전 9~11시) '온고지신' (오후 7시~7시30분)등은 문화정보나 역사.문화재.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사이 사이에 짧은 음악을 몇 곡 틀어주는 정도다. 진행자와 출연자가 나누는 대화가 너무 길어 정작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3일 오전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 이야기 끝에 방송한 '동백타령' 은 시간이 모자라 노래 도중에 잘리고 말았다. 이에 반해 조상현 명창이 부른 단가 '사철가' 는 3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나 방송돼 전체적인 선곡 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전체 편성 중 전문가가 진행하는 깊이있는 감상 프로그램은 요일별로 정악.민속악.판소리.창작음악 등을 소개하는 'FM 국악특강' (오후 1~2시)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프로그램이 신변잡기식 해설과 함께 진행돼 음악의 체계적 이해에 별 도움을 못준다. 차라리 짧은 곡목 소개에 전곡 감상을 유도하는 '솔바람 물소리' (오후 5~7시)가 더 나을 정도다.

무조건 많이 틀어준다고 능사는 아니다. 방송이 연주와 작품.음반을 걸러주는 비평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클래식 전문 채널인 BBC 3라디오(www.bbc.co.uk/radio3)처럼 대부분의 프로를 음악학자.음악평론가들이 진행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도 '판소리 전곡 감상' '세계의 민족음악' '작곡가 집중 탐구' '국악기 여행' '공연.음반 리뷰' '우리 음악과 문학' 등 보다 깊이있고 특화된 것들로 짜야 하지 않을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