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의료사고 방치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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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안양의 모병원에서 발생한 산부인과 사고는 의료사고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요약한 사고의 경과는 이렇다.

분만 예정일이 2월 10일이었던 산모는 임신으로 진단된 이후 안양 소재 모병원 산부인과 외래에서 규칙적으로 산전(産前)진찰을 받았다.

그동안에는 임신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지 않았다.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날인 2월 14일 저녁 무렵 통증을 느낀 이 산모는 그 이튿날 오전 위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 의사는 중한 임신중독증이라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 건강한 신생아를 출산시켰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돌아온 산모가 호흡곤란을 호소하자 담당의사는 폐부종을 의심해 흉부 방사선촬영을 했다. 그러나 상태가 더 악화되자 '도관삽관(導管揷管)' 이라는 시술을 하던 중 심폐(心肺)정지가 발생해 치료를 했지만 산모는 2월 17일 숨졌다. 도관삽관이란 심장으로 수액 및 약물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도관(가이드 와이어)을 이용해 다리의 정맥 혈관에 주사액 주입장치를 시술하는 방법이다.

숨진 산모를 부검했는데 놀랍게도 혈관 속에서 약 50㎝나 되는 도관이 발견됐다. 이때부터 유족들은 도관이 몸속에 들어가서 산모가 숨진 것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도관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망사고였다. 산모가 분만 후 임신중독증의 심한 후유증 때문에 숨진 사건이다. 치료과정에서 삽입한 도관은 산모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없는 물질이므로 의사의 과실을 묻기가 거의 불가능한 의료사고였다.

하지만 병원측도 임신중독증의 후유증과 치료과정을 가족들에게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 이번 사태를 일으킨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의료사고는 의사의 과실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의사의 과실이 없는데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억울한 피해자도 억울한 가해자도 없게 해야 한다. 이번 의료사고에서 유족측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병원측은 그들대로 가해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괴로움을 당하게 됐다.

누구의 잘못인지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보도돼 유족측은 더 억울한 피해자로 여겨지고, 병원측은 '회복할 수 없는' 가해자로 비쳐졌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의료사고가 분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일차적 피해자는 환자지만 의사의 피해도 간과할 수 없다. 의료사고는 매우 복잡한 의학적 메커니즘에 의한 의료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전문성 때문에 의사가 아니고는 입증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어떤 의사도 동료의사의 과실을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직업군(職業群)에서도 과실사고가 일어난다.

그런데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 과실이 증명되면 그 의사는 치명적인 사회적 대가를 치른다. 의사의 의료과실은 곧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반 직업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양성되지만 사람인 이상 과실에서 늘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번 의료사고에서 보듯 우리 사회가 유독 의사에게 가혹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의사가 동료의사의 과실을 증명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되고 그 피해가 환자측에 전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쨌든 의사가 동료의사의 의료사고를 외면하는 처신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사윤리규정은 '동료의사의 불법적인 진료에 대해서는 고발해야 한다' 고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과실의 일차적 책임은 의사과실을 방치하는 모든 의사에게 있다고 본다.

보건복지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의료분쟁조정법안들을 만들어 왔으나 항상 의사.변호사.시민단체간의 견해차로 물거품이 됐다. 서로 한걸음씩 물러서서 의료분쟁조정법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바람직하다.

민경찬(법의학사무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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