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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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박재규 장관은 인터뷰 도중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30여년을 북한.통일문제에 몰두해온 전문가로서 통일부장관으로 입각(入閣)한 것도 그렇지만, 평양 정상회담 준비의 주역으로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까지 맡아 역사의 현장을 목도했다는 자부심 때문이란 얘기다.

"사학(私學)총장과 장관자리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느냐" 는 질문에 그는 "통일부장관 자리는 참 힘든 자리" 라고 독백하듯 대답했다.

다소 연약해 보이는 체구에 늘 웃음을 잃지 않는 朴장관을 두고 처음엔 통일부 안팎에서 '혹 남북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에 끌려다니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얼마 전 열린 통일고문회의 때 원로인사들이 "장관급 회담을 하는 걸 보니 朴장관 외유내강(外柔內剛)이더라" 며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 측근은 귀띔했다.

朴장관을 평가할 때 늘 따라붙는 게 1973년부터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를 '북한 연구의 메카' 로 일궈낸 얘기다. 67년 뉴욕 시립대에서 피터 와일리스 교수의 '소련경제' 에 전율에 가깝게 매료된 그는 "70년 미국 뉴욕 사회과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군복무를 위해 귀국하던 비행기 속에서 '북한 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겠다' 는 뜻을 세웠다" 고 회고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 연구에 빠진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자료실에 한계를 느껴 직접 일본과 미국의 공산권 서적 판매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朴장관은 무척 가정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여간해서는 집에 외부손님을 받지않아 제자들도 명절 때 세배를 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

朴장관은 수상스키를 비롯해 격렬한 운동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 '피스톨 박' 으로 불렸던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동생인 그는 합기도가 공인 3단이고 태권도도 '수준급' 이다.

지난해 12월 평양 장관급 회담 때는 북한식 태권도를 선전하던 전금진(全今振)북측 단장에게 "한 판 겨뤄 볼까요" 라며 기습 제안을 해 놀라게 해준 적도 있다.

하지만 입각 후에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운동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부인 김선향(金仙香.57)씨는 남편의 전 직장인 경남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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