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읽히는 기사속 숨겨진 '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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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이 칼럼을 쓰면서 나는 중앙일보 역시 사회 전반에 퍼진 편견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재생산해 내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동자를 대하는 시각,여성을 대하는 관점이 특히 그랬다.하기는 나 개인조차도 사회 전반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신문사라는 거대한 조직이 어찌 자유로울 수 있을까마는,언제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물론 공정한 보도를 하고 합리적인 논평을 하려는 분들의 노고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문제는 그것이 너무 희미하다는 데 있다.

지난주 23일(토요일)자 신문은 이같은 편견들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기까지 했다.먼저 “도올 철학 논쟁 이제부터다”(33면)라는 기사는 학자도 아닌 사람이,그것도 여성이,세계 ‘최고’ 대학에서 공부한 학자이자 ‘지식 엔터테이너’의 고전 해석에 도전하는 얘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는 했다.

기사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40대 보통 아줌마”라는 측면에 그 긴 인터뷰의 초점을 둠으로써 학문 비판을 선정적이고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면에 걸친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도올 비판의 요점을 알고 싶었으나 실패했다.그녀의 기고문을 함께 실어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피니언 면에 실린 홍사종씨의 칼럼 역시 맥을 같이한 것으로 보였다.칼럼 제목을 “남자도 보호받고 싶다”라고 뽑음으로써 중앙일보는 “남자도 괴롭다”는 식의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를 저자와 함께 드러낸 셈이 됐다.그것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백인들이 흔히 내놓는 “우리라고 다 좋은 줄 아느냐”란 항변처럼 엉뚱하게 들린다.

남자도 보호받고 싶다….물론이다,남자도 여자도 노동자도 기업인도 그것이 정당할 때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그런 면에서 12면에 실린 “대우차 직원 구직 도와드려요”라는 사진은 중앙일보가 노동자를 보는 시각의 일단을 보여준 듯해 아쉬웠다.‘국민의 정부’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마치 지난 군사 정권들처럼 ‘진압’했다.

그러나 강경 대응이란 것이 당장은 손쉬울지 몰라도,진정한 의미에서 대책이 될 수 없음은 우리의 역사가 웅변하지 않았던가.우리 사회가 겨우 이루어 온 민주주의에 재를 뿌리는 듯한 이번 사태를 보도하면서 중앙일보는 이제껏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던 칼날을 거두어 들였다.

다분히 불우 이웃 돕기 상담을 연상시키는 사진,아마도 내 생각에는 해고된 노동자라기보다 그 부인인 듯한 어떤 여성이 아이를 들쳐업고 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과 함께 있는 사진을 실으면서 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언론사 세무 조사에 대한 기사도 중앙일보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우리 납세자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세금을 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신문사라고 해서 예외가 된다면 중앙일보를 비롯한 이른바 주류 신문들이 앞으로 다른 기업의 세무 비리에 대해 무슨 낯으로 보도를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IMF 관리체제 이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뼈를 깎는다’고 했다.그런데 자기 뼈는 관두고 남의 뼈만 그렇게 깎아댔으니,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가 없다는 것이 우리 고단한 세인들의 세상 사는 느낌이 아니던가.구조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구국의 길인 양 말하면서,언론 매체 스스로는 ‘제 뼈 챙기기’에 연연한다면 다음에는 신문의 존재 이유가 거리로 내몰릴지도 모를 일이다.

孔枝泳(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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