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안개 낀 인천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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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꿔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에서 안개는 도시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에워싼다.

하지만 공항이 안개에 휩싸이면 운치는 고사하고 기능이 마비되고 만다. 개항을 한달여 앞둔 인천국제공항이 뜻밖의 바다안개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바다 1천7백만평을 매립해 환경이 변한데다 아스팔트까지 깔아 낮과 밤의 기온차가 더 커진 것이 이유라고 한다(본지 2월 22일자).

인간이 가하는 인위적인 변화에 자연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미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해변의 모래사장을 보자.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대서양 연안은 연평균 2~3피트씩 침식돼왔다.

이에 맞서 해안도시들은 저마다 방파제를 건설했다. 그 결과는? 모래톱이 사라졌다. 듀크대학의 지질학자 오린 필키는 1980년대 후반 대서양 연안 20여곳의 해안면적을 비교했다. 방파제가 있는 해안은 없는 곳에 비해 면적이 크게 줄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예컨대 뉴저지주의 시브라이트에는 한때 엄청난 크기의 방파제 앞에 3백피트나 되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방파제 앞에 바닷물뿐이다.

이유는? 경사가 완만한 해변에서 바닷물 에너지의 상당부분은 파도가 바다쪽으로 되돌아갈 때 소멸된다. 그런데 방파제는 이 과정을 방해한다.

물은 강하게 방파제를 때린 다음, 강하게 반사돼 모래를 더 많이 씻어내는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의 해안연구소장 레더맨 박사는 말한다. "방파제를 만들면 그 앞의 해변과는 작별하는 셈이지요. "

모래사장이 없으면 해변의 휴양지가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의 메인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가 해안에 고형 영구구조물의 신규건축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이애미 해안은 이미 1980년대 초에 6천5백만달러를 들여서 모래를 다시 채워넣었다.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상습적으로 마비될 인천국제공항은 어찌할 것인가. 담수화에 실패한 시화호의 교훈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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