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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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주최로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공청회가 열렸다. 두 가지 느낌이 스쳐갔다. 오죽 문제가 많으면 할 일 많은 시민연대가 공청회까지 열었을까 하는 생각과 '순위 프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가 아니라 '어떻게 폐지할 것인가' 가 논제라 놀랐다.

때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방송사에서 '뽑기' 프로그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우선 시청자가 '뽑기' 를 좋아한다. 미인대회에서 만약 진.선.미를 가리지 않고 향토미인.우정상.포토제닉 등만 가린다면 시청률은 분명 곤두박질칠 게 뻔하다(진과 선을 발표하기 전에 사회자가 그토록 시간을 끄는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둘째, 이른바 인기가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스코리아와 가요순위 프로의 공통점은 모두 생방송이라는 것과 메이저 방송사의 전파를 탄다는 것이다(안티 미스코리아에서 폐지를 주장하는 건 미인대회가 아니라 공중파 방송사의 미인대회 생중계다). 미인대회는 그야말로 원하는 사람들이 나와 자기네들끼리 벌이는 잔치다. 여성의 상품화를 문제삼는 시각이 늘 있는데 아닌 말로 그들은 스스로 상품이 되기로 마음먹은 자들이다.

강조하지만 미인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뽑는 대회가 아니다. 뭇 사람들 앞에 수영복 차림으로라도 나와서 미인으로 공인받기를 원하는 담대한 처녀들의 잔치인 것이다.

가요순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뽑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바로 지금 음악에 심취해 있는 청소년들과 그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애쓰는 또래 가수들의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 인 셈이다. 그들만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며 간섭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 그건 동네꼬마 녀석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연 날리는 일과 다르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노래를 이왕에 뽑으려면 투명하고 진지하고 공정하게 하라. 아니면 넓은 광장(공중파)에서 하지 말고 언덕 위(케이블)에 올라가 하라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느낀 것인데 사람은 자라면서 음악에 푹 빠지는 시기가 있다. 대체로 10대 중반이다. 지금 음악도시의 가장 열렬한 시민은 물론 그들이다. 그들끼리 모여 춤을 추건, 립싱크를 하건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애들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장사꾼 어른들이다. 바쁜 시민연대가 공청회까지 열며 핏대를 올리는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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