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이천수의 습관성 어깨 탈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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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탈리아 프로축구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이천수를 보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가 연상된다.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에게 조용히 나타난 어린왕자.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친구가 된 어린왕자처럼 이천수는 하루 아침에 국민의 스타로 등장했다. 이천수는 지난해 9월 2일 아시안컵 1차 예선이 열린 동대문운동장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약체 라오스와의 경기에 출전해 1골.2어시스트를 하며 특유의 빠른 돌파와 재치 넘친 문전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이후 시드니 올림픽 직전 나이지리아와 두차례 평가전을 통해 대학 1년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차고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며 대뜸 '한국 축구의 대들보' '한국 축구의 차세대 간판' 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이천수가 지난 20일 유럽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밀며 이탈리아로 갔다.

상큼한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출국하는 이천수를 보며 과연 그가 20세 약관의 나이로 세리에A 리그에서 성공할지 걱정하는 전문가들과 팬들이 많다.

이미 이동국(독일)과 설기현.이상일(이상 벨기에).안정환(이탈리아) 등이 유럽에서 활약 중이지만 이천수는 어리고 체격이 왜소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천수는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해외생활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볼 감각, 드리블 능력에다 어렵게 자라면서 몸에 밴 헝그리 정신 등이 돋보인다.

이천수가 몸싸움이 강한 유럽축구에 적응하기엔 너무 왜소하고 프로경험이 없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말 걱정되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이천수의 어깨다. 이천수는 한국 나이로 만 20세지만 그의 어깨는 환갑.진갑을 다 넘긴 헐어버린 어깨다. 이천수는 몸싸움이 잦은 미드필더, 혹은 스트라이커로 활약한다. 포지션 특성상 상대 수비수와의 신체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다.

특히 볼을 다투는 상황에서 어깨싸움은 불가피하다.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거나 넘어져 어깨에 충격을 받게 되면 '탈구' 현상이 발생된다. 이천수의 습관성 탈구는 위험 정도를 지나 선수생활에 치명적일 수 있을 정도다.

출국전 공항 기자회견 때 이천수는 어깨 탈구와 발목 부상으로 컨디션이 70% 정도라고 밝혔다.

팔꿈치나 무릎.어깨 등의 탈구 혹은 탈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통증을 수반한다. 습관성 탈구는 선수들에게 부상 공포심을 갖게 해 몸싸움을 피하게 한다.

필자는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이천수에게 "누가 뭐라 하더라도 먼저 어깨를 수술해 몸을 만들어라" 고 신신 당부했다. 필자도 현역시절 양쪽 어깨의 습관적 탈구로 고통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수술로 고쳤다.

이천수의 이탈리아행은 월드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천수가 수술 날짜까지 잡았다가 취소하고 유럽 진출의 욕심을 낸 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가면 판가름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체는 한번 손상되면 완벽히 치료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천수가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선수생활을 마치고 어린왕자처럼 밝은 미소를 띠며 우리 앞에 나타나길 기원한다.

신문선<축구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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