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어린이, 정신질환 탓인 경우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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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도 좌절하거나 가정불화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학습부진아로 낙오된 아이들 중에는 정신과적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의외로 숨어있는 재능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 신학기를 맞아 학습부진과 관련된 질환을 점검해본다.

서울대의대 소아정신과 신민섭교수는 "공부 못하는 유형과 원인은 다양하다" 며 "지능은 괜찮아 보이는데 유독 학습에 문제가 있다면 왜 공부를 못하는지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고 조언한다.

공부 못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지능이 낮은 학습지진이다.

지능지수(IQ)85인 P양(11).저학년땐 별 문제가 없었지만 4학년이 되면서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어졌다.밤늦게까지 공부를 시켰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고 생기마저 잃어갔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정유숙교수는 "학업능력은 타고난 지능과 관계가 있다" 며 "자신의 지능보다 과도한 능력을 요구받으면 성적은 안오르고 사회적응·정서발달에 문제만 초래한다" 고 밝힌다.

P양도 우울증에 빠지기 직전 병원을 찾았다. 학업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후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면서 P양은 공부는 여전히 못했지만 예전의 발랄함을 되찾았다.

"머리는 괜찮아 보이는데 쉬운 단어도 잘못 읽고, '우리' 를 '리우' 라고 써요. 아무리 주의를 줘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아요“라는 A군(9)의 어머니.

A군은 읽기 ·쓰기장애가 있는 학습장애자다. 이 병은 뇌의 이상으로 인해 글자·부호·숫자를 잘못 인식하거나,제대로 인식했다 하더라도 '출력' 이 잘못되는 게 특징.

이런 학생은 지능(IQ)이 좋아도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이 적어도 2년이상 현저히 떨어진다.A군 지능도 1백15로 평균 이상이다.

산수장애 환자는 쉬운 덧셈·뺄셈도 못하고 더하기(+),빼기(-)같은 계산부호도 헷갈려 한다.신교수는 “부모나 선생님 모두 이 병을 잘 몰라 아이에게 ‘주의가 산만하다’며 혼만 낸다”고 밝힌다.

공부하기는 힘들고 혼만 나다 보니 아이는 '나는 머리가 나쁘다' 며 아예 공부를 포기하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우울증 ·품행 장애 등 정신과 문제를 잘 일으킨다. 이 병 역시 조기 발견 ·치료가 최선책이다.

서너살 이후에도 말을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능력이 유난히 늦될 때, 반복해서 위-아래, 좌-우 등 시 ·공간을 인식하지 못할 땐 일단 상담을 받아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후엔 글자·숫자를 거꾸로 쓰거나 읽을 때,손놀림이 어눌해 연필을 어색하게 쥘 때, 원 ·네모 ·세모를 또래보다 못그려도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치료는 유아기부터 시·공간 능력을 발달시키는 놀이 등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뇌의 장애가 있으므로 단기간에 좋아지진 않는다.

공부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L군(10).도무지 집중을 못하고 너무 산만하다보니 주위사람도 정신이 없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인 이 병 역시 지능은 정상이나 뇌에 이상이 있는 병이다.

물론 본인은 자신의 문제를 모른 채 하루종일 수시로 혼나다 보니 늘 어른과 사회에 대한 분노심을 갖게 돼 성장하면서 점차 행실에 문제가 생긴다.다행히 약물 등 정신과 치료만 일찍 받으면 산만증이 치료되면서 성적이 놀랄 만큼 향상된다.

4학년까지 공부를 썩 잘했던 O군(12). 2년전 아버지 실직으로 부모가 밤낮없이 싸우는 통에 우울증에 빠져 차츰 성적이 하위권으로 밀렸다.

O군처럼 정서문제로 공부를 못하는 학습부진은 정서장애를 치료하면 자신의 능력을 곧 바로 회복할 수 있다.

황세희 전문위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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