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경쟁이 살아 있는 한 4년 뒤 ‘소치 질주’도 문제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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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06면

내일이면 밴쿠버 겨울올림픽도 막을 내린다. 참으로 숨가쁜 나날들이었다. 한국 빙상은 이정수의 쇼트트랙 금메달로 힘차게 레이스를 시작했고, 모태범과 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을 따내면서 절정으로 치닫더니 김연아의 여자 피겨 금메달로 하이라이트를 이루었다. 밴쿠버에서 거둔 메달 하나 하나는 그 빛깔에 관계없이 한국 빙상의 위대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이 빛나는 성취의 근본적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활기찬 젊은이들의 기상과 건강한 경쟁, 대한빙상연맹과 삼성의 합리적인 지원이 이룬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일등은, 제도의 틀 안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에 익숙해진 젊은 선수들의 단련된 경기력과 성숙한 의식이라고 판단한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적지 않게 우려를 산 부분은, 소위 ‘파벌론’이었다. 빙상계에 파벌이 있고, 그로 인한 병폐가 크다는 비판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이미 4년 전 토리노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제기된 비판이다. 그러나 파벌 시비는 그 자체가 소모적인 것이고, 깊이 들여다보면 파벌론의 실체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 파벌론의 시발은 치열한 경쟁에 있다. 그러나 스포츠란 본디 경쟁이며, 경쟁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면 스포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토리노 대회 이후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대한빙상연맹을 비롯한 우리 빙상계는 파벌 없이 순수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풍토와 경기장 분위기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연맹 관계자 및 지도자와 선수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신뢰와 소통의 틀을 구축했다.

지도자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지도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지도자와 선수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통해 이해와 신뢰를 쌓아가도록 노력했다. 선수들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과 같은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습과 경기 전 과정을 재정비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지도자와 선수들의 신뢰가 극대화됐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우리 빙상의 위대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승리의 영광은 단지 빙상연맹이나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삼성과 같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전유물일 수 없다. 대한민국 빙상의 꿈을 길러낸 선수들의 부모와 세계적인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지도자, 선수들의 학교 등이 모두 대한민국 빙상이 거둔 승리에 공헌하였다.

밴쿠버에서 거둔 승리의 달콤함을 마음껏 누리자. 그리고 또 다른 4년 후 대한민국 빙상을 위한 ‘소치 프로젝트’를 준비하자. 아니, 우리 겨울스포츠의 미래를 준비하며 더 새롭고 큰 꿈을 꾸어 보자. 그 꿈이 국민의 성원이라는 토양 속에 싹을 틔워 이승훈·모태범·이상화·이정수·김연아가 나올 수 있었다. 미래를 향한 꿈만이 제2의 이승훈·모태범·이상화·이정수·김연아를 가능하게 한다.

그 꿈을 완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경쟁이며, 건강한 경쟁이 살아 있는 한 파벌론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경쟁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믿음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거둔 또 하나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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