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초등시절 문집’ 단독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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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금메달을 들고 환히 웃고 있다.

유난히 겨울을 좋아했던 아이. 하얗게 내리는 눈이 좋아 동시를 쓰고, 그날의 추억을 일기로 적어 놓았던 ‘겨울 소녀’ 김연아가 이제는 진정한 ‘겨울 여왕’이 됐다. 지금은 ‘대인배 김슨생(대인배는 소인배의 반대말. 김슨생은 김 선생의 인터넷식 표현)’이라고 불리지만 어려서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던 아이였다. 본지가 입수한 김연아의 초등학교 1학년, 6학년 시절 학급 문집에는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뒤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자 했던 일곱 살 소녀의 꿈, 슬럼프를 겪으며 포기의 문턱에서 다시 꿈을 되찾게 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야겠다”=남이 버리려던 낡고 빨간 스케이트 부츠, 그것이 시작이었다. 김연아가 다섯 살 때 고모에게서 받은 첫 스케이트화. 김연아는 종잇장같이 얇은 그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을 지쳤다. 남다른 운동감각을 발견한 류종현 코치는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피겨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입니다. 아이를 밀어주실 형편이 되십니까”라고 물었다. 김연아는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엄마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다”고 썼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본 아이스쇼 ‘알라딘’은 그에게 꿈을 심어 줬다. 당시 담임이던 윤명자(2007년 정년 퇴임) 교사가 간직하고 있는 문집에는 아이스쇼를 본 날의 그림일기가 수록돼 있다. ‘나도 스케이트를 열심히 타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윤 교사는 그 시절의 제자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윤 교사는 “연아는 키가 작고 가냘픈 아이였다. 힘들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방과후에 어김없이 과천 빙상장으로 가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며 10년 넘게 간직한 편지와 사진을 내놓았다.

◆수줍음 많던 연아의 숨은 끼=1학년 여름방학, 김연아는 ‘보(고)싶은 선생님께’라며 철자를 빼먹기도 하고 친척집을 ‘칙척집’이라고 쓰면서도 정성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은 답장에서 ‘얌전하고 착한 연아를 선생님은 무척 좋아하는데 발표를 하지 않을 때는 속상하다’며 방학 동안 발표 연습을 당부하기도 했다. 자기소개서에서도 장점은 ‘없다’, 단점은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적은 김연아였다.

그러나 수줍음 많던 아이에게 정반대의 끼가 숨어 있었다. 윤 교사는 “연아가 아이돌 그룹 HOT를 좋아했다.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양로원 위문 공연에서 HOT의 춤을 추며 할머니·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지금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며 미소 지었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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