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수매값 시세대로” 정읍 농협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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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농민단체 회원들이 이자를 현물로 납부한 벼가 황토현농협 사무실에 쌓여 있다.

전북 정읍 농협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민들의 벼 수매에 시장원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농민들의 손해를 보전해주기 위해 시장가보다 비싼 값에 벼를 사들였으나 앞으로는 시장가를 기준으로 수매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이 전국 농협으로 확산될 경우 농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 큰 파장이 예상된다.

◆“시장원리 따라야 생존”=정읍지역 6개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최근 앞으로 벼 수매가는 현재 시장가를 기준으로 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유남영 정읍조합장은 “지난 10년간 농민단체가 수매 가격을 사실상 결정하고 농협은 이를 추인하는 게 관례처럼 돼왔다. 조합장이 선거직이다 보니 농민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면서 끌려다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장은 “벼를 시세에 맞춰 매입하기로 했다. 그보다 더 높은 값은 쳐줄 수 없다. 대신 구입한 벼를 팔아 수익금이 발생할 경우 조합원들에게 환원하겠다. 시장원리를 따라야 (농협이)생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가마당 벼 시중가는 4만1000원으로 3~4개월 전보다 2000~3000원 떨어진 상태다. 이들 6개 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115만 가마를 5만4000원씩에 매입했는데 가마당 2000~1만5000원씩 손해를 보고 팔고 있다. 이 때문에 황토현농협의 경우 2009년 금융위기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경영 끝에 관리조합(합병 직전 상태)을 겨우 벗어났으나 벼 수매 적자로 10억원의 손해를 봐 다시 관리조합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6개 농협은 지난해 벼 수매가가 높아 모두 5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부실경영 농민에 전가”=요즘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주요 도로변에는 ‘쌀값폭락 부추기는 조합장 사퇴하라’는 노란색 깃발과 플래카드 등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남북리 황토현 농협 주차장 마당에는 5000여 가마의 벼들이 4개월째 야적돼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창구마다 벼 가마들이 무더기로 쌓여 민원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업무를 봐야만 한다. 이달 초 이 지역 농민단체는 벼 가마 시위뿐 아니라 조합장 허수아비를 만들어 곡괭이·도끼로 내려찍는 살상 퍼포먼스(본지 2월 8일자 3면)까지 벌였다.

이에 대해 윤택근 정읍농민단체연합 집행위원장은 “농협이 부실 경영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조합장들에게 지난해부터 협의회를 만들어 수매가를 논의하자고 제의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수매가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농민들한테 무조건 따르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지역 농민단체는 벼 수매 가격을 5만원 이상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전북도 내 타 지역 농협들은 수매가를 4만4000~4만6000원으로 결정했다.

정읍=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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