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히드 탄핵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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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도네시아 의회가 1일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갈 수 있는 강수를 둔 것은 표면상 그의 스캔들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또 이번 조치의 이면에는 와히드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바탕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노린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과 수하르토로 대표되는 구 집권 세력인 골카르당의 와히드에 대한 반격이라는 정치적 목적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선 와히드가 지루한 정치공방을 통해 탄핵으로 몰락할지, 아니면 정략적 타협으로 기사회생할지 속단하기 어렵다.

의회의 이날 결정은 우선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와히드의 부패 의혹이 실정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위는 우선 와히드 측근의 조달청 기금 횡령사건(블록게이트)에서 와히드가 횡령 금액 중 일부를 받아 자신의 친구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냈다.

특위는 또 브루나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증발 사건(브루나이게이트)에서 와히드가 돈을 분쟁지역에 보냈다고 해명했으나 조사 결과 친구에게 맡겨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나 진술이 모순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는 1998년 부패한 수하르토를 대규모 시위로 몰아낸 뒤 집권한 와히드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스스로 부패를 저질렀다는 것은 국민적 저항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다.

따라서 의회로선 어떤 식으로든 와히드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의회의 특위 보고서 채택과 해명 요구서 발송으로 와히드가 실제로 탄핵 단계까지 내몰릴지는 미지수다.

의회의 해명요구와 와히드측의 반발로 정치공방만 계속될 수도 있으며 이 와중에 경제위기가 재발할 경우 정치적인 대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의 경우처럼 정국의 방향타를 쥔 메가와티의 선택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물론 그의 선택은 와히드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반발 강도에 따라 수위가 조절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메가와티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약점이 잡힌 와히드를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경제가 최악으로 떨어지고 정치 불안으로 아체.이리얀자야 등지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와히드의 탄핵을 밀어붙일 경우 자충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역사상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을 무리하게 탄핵까지 할 경우 떠안게 될 부담이 너무 클 수 있는 만큼 2004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메가와티는 지난해 8월 국민협의회에서 와히드가 천명했던 권력 분점과 2선 퇴진 약속을 실질적으로 받아내는 데 주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의 경우처럼 와히드가 권좌에서 완전히 축출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헌법상 대통령의 임명과 탄핵은 최고 권력기관인 국민협의회(MPR)에 있는 데다 최소 4개월 동안 복잡한 절차와 치열한 정치공방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사회 불안이 고조될 경우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는 군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메가와티로선 선행과제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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