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 李씨 종손 이득선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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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문중에서 장남으로만 이어 내려온 큰 집.그러면서도 사대부(士大夫)가문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는 집을 종가(宗家)라 부른다.

이득선(60)씨 집안은 외암민속마을에서 유일하게 종가의 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李씨는 1970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3년동안 시묘(侍墓)를 했다. 집에서 왕복 30리 거리인 선산에 원두막을 지었다.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굴건 제복을 갖춰입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부친 묘를 지켰다.

대학원(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을 졸업, 모교에서 조교를 할 정도로 ‘신식학문’에 흠뻑 젖어있던 그가 3년 시묘를 한 것은 당시로선 큰 화제거리였다.

그는 “태어나서 혼자 힘으로 자랄 때까지 부모가 돌봐준 정성의 1만분의 1이라도 깨닫고 싶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 때를 전후해 그의 집과 외암리 마을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와 학생들은 물론이고 국내외 민속학자 ·고건축학자 등 지금까지 그를 만나고 간 사람이 5천명을 넘는다.

그는 사서삼경 ·사례편람(관혼상제 관련 집안 고서)등 전통 제사 ·다도(茶道) ·음식 ·의복 등에 관한 고서적 60여권을 독학했다. 많은 국내외 민속학자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그에게 자문(諮問)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는 제사때 물을 먼저 올린 다음 차를 올린다. “보통 사람들이 설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라는 말에 이 전통의례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전통의 원형을 지켜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원래 종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러나 종손(宗孫)이던 형이 6.25때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종손을 승계(承繼)했다. 형님이 후손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 자신의 큰 아들 준동(32)씨를 먼저간 형님의 양자로 보냈다. 대를 잇는 전통을 지킨 것이다.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유기(鍮器) ·의복 등 유물 1천여점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10년전 온양민속박물관에 이들 물건들을 기증했다.

5대조 할아버지때부터 전해지는 연엽주 제조법도 큰 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李씨는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나의 인생이 보람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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