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잔치는 끝나고 골병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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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1998년 11월 메가 머저(거대 합병)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다른 기업에 먹힐 것을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벤츠를 만드는 독일 다임러그룹이 미국 3위의 크라이슬러사를 인수, 세계 3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으나 예상한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지난달 29일 앞으로 3년에 걸쳐 미국 크라이슬러 부문의 전체 직원 중 20%인 2만6천명을 줄이고 남미지역의 6개 공장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2년2개월 동안 합병의 시너지는 고사하고 후퇴를 거듭한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 긴박해진 구조조정〓합병 이후 최고 1백8달러에 달했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주가는 최근 40달러대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크라이슬러 부문의 사정이 나쁘다.

다음달 발표될 크라이슬러의 지난해 4분기 손실은 13억3천만달러로 관측되고 있다. 크라이슬러의 인기 차종인 미니밴.지프의 제품 반품률은 9%에 이르고 있다. 회사측은 뒤늦게 가혹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독일인인 디테 제셰 크라이슬러 사장은 이를 북미시장의 자동차 수요감소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많은 반품에서 보듯 경쟁자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에 비해 제품력이 뒤진다는 사실이다.

◇ 합병효과 왜 못 살렸나〓전문가들은 시장상황보다는 독일과 미국 경영진간의 반목이 큰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합병 당시 두 회사는 "경영권을 공동으로 나누는 대등한 합병" 이라고 발표했다. 미 자동차 노조 소속의 크라이슬러 노조가 경영감독위원회 참여권한이 있는 독일 노조에 중복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노사화합도 꾀했다.

또 사내 경영대학원을 설립, 간부 전원을 재교육해 기업간 문화차를 줄인다는 계획도 내놨었다.

그러나 두 나라 경영진간의 밀월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유르겐 슈렘프와 함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공동 회장직을 맡았던 밥 이튼이 지난해 1월 물러난 이후 독일측의 입김이 세졌다.

크라이슬러의 사장인 제임스 홀든(미국)은 예상치보다 두배나 많은 50억달러의 순익을 내라는 압력을 독일 경영진으로부터 받았다.

이에 홀든은 자동차 딜러들의 수요보다 12만대나 많은 미니밴을 생산하고 마케팅 비용을 늘리는 등 무리수를 뒀다.

이같은 확장 결과 싼 값에 차를 딜러들에게 건네주고 재고를 처분해야 했다.

결국 홀든은 해임되고 독일인인 제셰가 들어섰다.

◇ 자구계획 효과 있을까〓크라이슬러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자 다임러크라이슬러가 71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회생노력을 꾀하고 있지만 경영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감원과 공장폐쇄 계획에 대해 미국측 근로자들은 다임러측이 크라이슬러를 없애려는 의도라며 불안해 하고 있다.

다임러에 부품을 공급하는 유럽 자회사인 스마트카의 경우 매년 5억달러의 손실을 보고도 폐쇄하지 않는 것이 미주지역 근로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미주와 유럽에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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