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당밖에서 여론 청취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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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설 연휴가 끝난 26일에도 여의도 당사에 출근하지 않았다.20일부터 벌써 7일째 잠행(潛行)이다.

총재실 관계자는 "李총재가 29일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 연찬회에서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 이라고 말했다.

대신 李총재는 이날 잠행을 한 뒤 처음으로 당내 인사들을 만났다.

서울 프라자호텔 중식당에서 박관용(朴寬用).서청원(徐淸源).정재문(鄭在文)의원과 이자헌(李慈憲).이우재(李祐宰)전 의원 등 당 지도위원 5명과 대외비(對外□)로 오찬을 함께 했다. 김기배(金杞培)총장과 주진우(朱鎭旴)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정재문 의원은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당당하게 정국에 임해라. 국민에게 안기부 사건의 진실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고 건의했으며 李총재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고 전했다.

李총재는 저녁에는 프라자호텔 일식당에서 만찬을 겸해 부총재들과 만났다. 모임에는 양정규(梁正圭).김진재(金鎭載).박희태(朴熺太).하순봉(河舜鳳).이환의(李桓儀).이연숙(李□淑)부총재가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李총재가 고심하는 대목은 설 연휴 때 의원들이 확인한 '경제회복을 우선하라' 는 민심과, 대여(對與)투쟁을 어느 수준에서 조절할 것인지에 있다" 고 말했다. 더구나 법무부의 9백40억원 국고 환수 소송은 李총재의 선택폭을 제약하고 있다.

그는 "민생과 대여 공세를 나누는 강온(强穩)의 수위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 뒤 "그렇지만 민생과 정쟁(政爭)을 분리.대처하겠다는 李총재의 의지는 굳어진 것 같다" 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李총재는 검찰의 안기부 자금 수사와 관련, "우리 당이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용기를 가지고 대처해 달라" 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이날 아침 당3역(총장.총무.정책위의장)이 주재한 당직자 회의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주당이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기가 불가능하다" 는 강성 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법무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맞서 당내 변호사 출신 의원들로 구성된 '야당 수호 법률대책특위' (위원장 朴熺太부총재)를 발족했다.

여기에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를 상대로 피의 사실을 공표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손해배상을 청구키로 했다.

특위는 공적자금의 부당한 사용을 국민 혈세를 낭비한 대표적 사례로 꼽고, 납세자들의 서명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맞불을 놓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회의에선 "당 재산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경우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는 주장도 나왔다.

서승욱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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