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눈멀어 음란경쟁 '컴박사'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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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래가 촉망되던 컴퓨터그래픽 전문가가 인터넷 방송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음란 인터넷 성인방송국 운영자로 전락한 과정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

19일 검찰에 구속된 인터넷 성인방송 '69캐스트' 소유자 李모(39)씨. 李씨는 1980년대 중반 H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 있는 P대에서 컴퓨터그래픽 분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가 전공한 디지털영상 그래픽은 컴퓨터의 동영상 화면을 실제 장면처럼 처리하는 기술로 부가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1년 귀국한 李씨는 컴퓨터를 활용해 그린 유화.수채화 등을 인터넷 갤러리에 전시하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로 컴퓨터디자인 업계에선 촉망받던 젊은이였다.

기업을 상대로 컴퓨터를 이용한 신제품 디자인을 해주면서 연간 수억원을 벌어들이던 李씨는 지난 99년 종합 생활정보를 서비스하는 인터넷 방송국을 열었다.

李씨의 인터넷 방송국은 개국과 함께 기발한 아이템을 개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및 송출까?전과정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한 인터넷 방송국 자동 구축 시스템을 네티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또 유엔개발계획(UNDP)에 개발도상국 관련 뉴스를 무료로 공급하는 한편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최신 뉴스검색 엔진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인터넷 방송국이 제대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 李씨는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인터넷 사업을 찾던 李씨는 지난해 7~8월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성인방송국에 눈을 돌리게 됐다.

유료 회원제인 데다 '현금 장사' 여서 수익성이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것.

李씨는 검찰에서 "잘 되는 한 업체는 유료회원이 5만명에 달하고 월 수익이 5억원대에 이른다는 말을 듣고 사업에 손을 대게 됐다" 고 진술했다.

李씨는 성인방송 이용자들이 다른 성인방송국 프로그램과 비교하며 점점 노골적인 노출과 묘사를 요구하자 회원관리를 위해 포르노 수준의 음란 동영상까지 방송하게 됐다고 후회했다 한다.

검찰 관계자는 "李씨가 '한번 발을 들여놓으니 선정성 경쟁으로 치닫는 성인방송의 추세를 거스르기 어려웠다' 며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고 말했다" 고 전했다. 그는 인터넷 방송국 제패라는 자신의 꿈을 접게 됐다.

한편 음란 인터넷 성인방송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은 19일 인터넷 성인방송업체 H사 대표 金모씨 등 3개 회사 대표를 소환했으나 이들 중 두명이 소환에 불응, 이르면 주말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설 방침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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